[인문사회]'서양의 가족과 성'…중세교회에선 결혼보다 독신

  • 입력 2003년 3월 14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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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가족과 성/김경현 등 지음 한국서양사학회 엮음/288쪽 1만2000원 당대

가족해체는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화혁명이다. 이 책은 서양사에서 가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돌아보고 있다.

서구의 중세는 기독교가 세속 윤리와 충돌 혹은 타협하면서 기독교적 결혼관을 확립해간 시기다. 성경에 따르면 바울은 한편으로는 동정(童貞)을 지키는 것이 더 낫다 해서 성을 낮게 평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해 성을 관용했다. 그는 선악의 2원적 모델 대신 동정, 결혼, 음행의 3원적 등급을 제시해 합법적인 성의 영역을 부부간의 성에 한정시켰다. 그러나 중세인들의 이상적 인간상은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 수사와 수녀였고, 교회가 찬양한 것은 결혼생활이 아니라 독신생활이었다.

종교개혁기에 넘어오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프로테스탄트에 따르면 자발적인 독신생활은 귀감이 될 만한 미덕이긴 하지만 육체적 유혹과 정신적 고통없이 순결을 고수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거의 도달 불가능한 영역일 뿐이다.

동정은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과 ‘만인사제주의’라는 교의로 인해 의미없는 것이 됐다. 순결유지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집착은 ‘선행을 통한 구원’이라는 교리의 소산이다. 구원은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해 영원히 죄인으로 존속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피조물에게 창조주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성직자들은 마치 순결이 구원으로 향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생각했다. 또 더 이상 구원의 중개자가 아닌 성직자에게 별난 잣대와 규범을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종교개혁가들의 입장이었다.

모든 프로테스탄트 지역에서 수도원 철폐가 단행되면서 독신이라는 이상은 종말을 고한 반면 일종의 필요악으로 간주돼 음양으로 묵과돼온 매춘은 가정의 위해요소로 지탄받아 철퇴를 맞았다. 종교개혁가들은 결혼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지만 결혼을 성례로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은 이혼과 재혼의 해석에 있어서 비교적 운신의 폭이 넓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재혼이 가능한 명실상부한 이혼을 인정했다. 특히 배우자의 간통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혼조건으로 간주됐다.

그렇다면 기독교에 영향받지 않은 고대 로마에서의 가족관은 어떠했을까.

제정 초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혼인법과 간통법을 분석해보면 상류층에서 출산을 위한 혼인을 강제하고, 그 혼인의 순결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의지를 강력하게 집약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는 남성에게 출산을 위한 혼인과 성애를 위한 혼외 성관계라는 성관계의 이원화를 허용했다. 즉 혼인의 순결성을 보장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간통을 규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법한 혼인 밖의 사실혼이나 매춘의 성관계에 대해서는 그것을 관용해 범법화하지 않는 원칙을 취한 것이다.

근대 이후 앙시앙 레짐 말기의 프랑스 가족, 18세기초 런던 상인의 가족, 19세기 독일의 노동자 가족, 20세기 나치 독일의 가족, 미국의 유태이민 가족, 소비에트 정권 초기의 가족 등을 다룬 논문들도 나름대로 흥미롭다. 다만 주제가 너무 세분돼 근대 부르주아 가족이 어떻게 해체되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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