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마네의 그림 패러디한 '이브 생 로랑'

  • 입력 2002년 4월 4일 14시 39분


이브 생 로랑의 광고
이브 생 로랑의 광고
1863년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살롱에 내놓았을 때 이 작품은 평가할 가치도 없는 졸작으로 치부되어 낙선한다. 이후 이 작품은 낙선전에 전시되었고 이를 본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질타를 받았다. 벌거벗은 여자가 눈에 거슬렸던 탓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누드화는 당시로서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의 이상화를 위해 그려졌건,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 그 자체가 표적이 되었건 간에 누드화는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여자의 누드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누드 자체가 표현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 장치되어 있다는 점 때문일 게다. 이 그림에서 성장을 한 남자들과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여자의 누드는 겉으론 근엄한 척하지만 속물 근성으로 가득 찬 부르주아 사회를 비꼬고 있다. 남성들의 복장은 당시 부르주아를 대변하는 복장이라 한다. 이 벗겨진 여인은 두 남자에겐 옆에 놓여 있는 과일처럼 하나의 오브제에 지나지 않는다. 두 남자를 위해 바쳐진 제물이다. 똑같은 사람으로 표현되었지만 누드의 여인이 사물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인의 눈은 살아 있다. 그 눈은 벗겨진 자신을 통해 부르주아의 위선이 벗겨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의 포인트는 우릴 응시하는 여인의 눈에 있다. 당시 부르주아들이 이 그림에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던 것은 그 눈빛이 싫어서가 아니었겠는가.

프랑스 파리의 워코프 앤 아르노댕(Wolkoff & Arnodin) 광고사에서 제작한 이브 생 로랑 광고는 마네의 그림과 몇 가지 점에서 닮았고 동시에 어긋난다. 세 사람의 위치와 포즈를 동일시했다는 점에선 닮았다. 그러나 이번엔 남성이 누드로 처리되어 있고 여성이 성장을 하고 있다.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벌거벗은 두 남자는 마네의 그림과는 달리 정물처럼 묘사되어 있다. 화석처럼 굳은 두 남자의 벗은 몸은 그래서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대신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여인만이 살아 있는 생명체로 묘사되면서 소비자를 응시하고 있다. 마네의 그림과는 반대로 이번엔 벗은 두 남자가 이브 생 로랑을 차려 입은 부르주아 여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제물로 전시되어 있는 셈이다. 상당히 의도적인 코디네이션이다. 마네의 그림이 부르주아의 위선을 비꼰다면 이브 생 로랑 광고는 물신의 경지에까지 오른 제품의 근엄한 위상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이 광고는 물신에 바쳐진 송가(頌歌)라 할 수 있다.

같은 성분으로 이미지를 표현하더라도 목적과 용도에 따라 메시지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마네의 그림이 충격적이었다면, 이 광고는 한 번 본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기에 충격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점에서 오히려 광고 9단의 교묘한 술수가 감지된다.

이브 생 로랑 광고는 은밀하다. 예술작품을 빌려 와 너무나 교묘하고 은폐적으로 치장했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제품의 숭고미에 압도당하고 만다. 루이 브뉴엘 감독이 그의 영화에서 탁월하게 묘사했듯이 부르주아의 매력은 은밀한 것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소비자를 응시하는 모델 케이트 모스의 눈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은밀한 카리스마!

김 홍 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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