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상-음반-공연예술사업 잇달아 철수

  • 입력 1999년 1월 20일 19시 41분


삼성영상사업단 직원들은 요즘 하루하루를 상실감 속에 보내고 있다. 영상사업단 해체가 코앞에 닥쳤기 때문. 케이블TV ‘큐채널’이 중앙일보에 매각될 예정이고 ‘오렌지’와 ‘나이세스’가 맡고 있던 음반사업은 사실상 중단상태.

매년 5∼7건씩 영화를 제작해왔던 ‘드림박스’도 올해는 새 영화 제작 계획이 전무한 실정이다. 비디오사업부는 잔고 물량을 소화한 다음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케이블TV ‘캐치원’은 매각설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이 영상사업을 시너지 효과가 높은 유망사업으로 지목해 그룹내 흩어져있던 영상, 음반사업부를 모아 사업단을 발족시킨지 불과 3년여만의 불상사다. 5백여명이던 직원수도 이제는 2백명 수준으로 줄었다.

영상사업단의 한 직원은 “구조조정 소용돌이에 휘말리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까지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영상산업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로 꼽혔던 삼성영상사업단의 해체를 필두로 대기업들이 영상산업에서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대우도 최근 영상사업을 그룹에서 분리키로 결정했으며 현대는 현대방송의 영상사업팀을 작년말 해체했다. 매년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케이블TV도 모기업의 구조조정 여파 속에 일차 정리대상에 올라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연구원은 “대기업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우루루 영상산업에 뛰어들었지만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시작하는 바람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한다.

일반문화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도 급감하고 있어 문화산업 전반에 주름살이 커지는 양상.

작년말 미술계가 합심해서 회생 운동을 벌였지만 모기업인 동아건설의 지원 중단으로 동아갤러리가 문을 닫은 사례가 일반문화의 부실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연예술매니저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대기업의 공연예술 지원 규모는 모두 22억원 수준. 97년 동기의 1백20억원에 비하면 5분의1이 채 안되는 액수.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문화산업에 등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외국자본의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어 문화시장의 대외종속이 심화할 전망이다.

미국 영상업체 ㈜코아필름은 지난해 충남 천안에 약 5만평 부지를 사들였다. 코아측은 이 곳에 수백억원을 투입해 애니메이션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도 지난해 국내 위성방송 시장에 대규모로 투자할 뜻을 비췄다. 케이블TV 업계에서는 몇몇 업체의 해외 매각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실정.

전문가들은 “문화산업의 붕괴는 조만간 핵심산업으로 자리잡을 컨텐츠산업(프로그램 및 관련 소프트웨어 제작)의 동반 붕괴를 일으켜 결과적으로는 전체 경제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문화관광부 문화산업총괄과 오용운서기관은 “당장 수익이 없다고 해서 손을 떼기보다는 장기계획을 수립해 사업을 추진하면 언젠가는 결실을 할 것”이라며 “단 대기업들이 지금처럼 모든 과정을 직접 챙기려 하지말고 제작은 전문업체에 맡기고 투자와 마케팅에만 치중하는 식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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