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는 디테일에 있다” 한국과 대만의 정책 차이[광화문에서/우경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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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인 9일. 약국마다 혼란은 여전했다. 마스크 공급 부족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보니 마스크를 사기까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구매 요일을 착각하거나, 품절 안내를 보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그 정책적 효과는 차차 검증되겠지만 마스크 대란이 쉽게 진정될 것 같진 않다.

마스크 배급제의 원조는 대만이다. 한국에 넘어오며 홀짝제가 5부제로 변형됐을 뿐. 우리의 사나운 민심과는 달리 대만 언론들은 ‘대만의 국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있다. 꼭 닮은 제도인데 무엇이 달랐나.

대만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1월 24일 마스크 해외 수출을 금지했고 1인당 구매 수량을 일주일에 성인 3장씩, 아동 5장씩으로 제한했다. 막상 정부가 나서자 마스크 생산량이 줄어든다. 결국 시행 열흘 만에 건강보험증 끝자리에 따라 홀수일, 짝수일을 나눠 일주일에 성인 2장씩, 아동 4장씩만 구매를 허용하는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까지는 섣부른 정부 개입이 실패로 끝나는 뻔한 전개였다.

한 달 뒤 반전이 일어난다. 하루 390만 개였던 대만의 마스크 생산량이 820만 개로 뛰었다. 다음 달이면 1300만 개로 늘어나는데 대만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일주일 구매량을 1인당 5장으로 늘릴 것이라고 한다. 이는 마스크 증산을 유도한 정부의 인센티브 덕분이다. 정부는 2억 대만달러(약 80억 원)를 들여 마스크 제조업체에 생산설비 60대를 기증했다. 민간 설비업체 30곳, 정부 연구소 3곳이 협업해 한 달 만에 60대를 뚝딱 만들었다. 앞으로 예산 9000만 대만달러(약 36억 원)를 더 투입해 30대를 추가 지원한다. 군인을 마스크 제조업체에 파견해 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도 덜어줬다.

우리 정부는 마스크 제조 인력이 아니라 감시 인력을 내려보냈다. 마스크 대란이 끝나면 빚더미가 될 생산설비는 자비로 사야 하고, 그마저도 구하기가 어렵다. 마스크 구매 단가를 올린다고 했으나 세계적인 마스크 대란 속에 원재료 값과 인건비가 상쇄될지 모르겠다.

디테일의 차이는 더 있다. 대만 정부는 마스크 생산량을 전부 사들여 구입가보다 판매가를 낮춰 팔았다. 개인은 장당 200원이면 살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장당 1500원에 사야 한다. 한국 정부는 900∼1000원에 구입한다. 다시 도매업체→소매약국을 거치므로 폭리라고는 볼 수 없으나 뒤늦은 시행으로 이미 단가가 오를 대로 올랐다.

대만 정부는 전시 상황에 준해 긴박하게 움직이며 정책의 디테일을 솜씨 있게 다뤘다. 여기에 민간이 호응했다. 우리 정부는 ‘감염병과의 전쟁’을 선언하고도 전시 대응을 하지 않았다. 마스크 생산량 증대가 관건인데 후방 기지라던 마스크 제조업체에 지원군도, 보급품도 도착하지 않았다. 심지어 물자 배분도 민간 기관인 약국에 맡겼다. 공적판매라는데 이윤 없이 팔 수 있는 주민센터는 제외했다. 성난 민심을 피하고 보려는 비겁함으로 비친다.

마스크 5부제를 결정한 5일 국무회의.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고 보건용 마스크를 낀 채 참석한 국무위원들을 보며 궁금해졌다. 단 한 명이라도 직접 마스크를 돈을 내고 사 본 적이 있을까. 그 대답에서 양국 마스크 정책의 디테일 차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마스크 5부제#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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