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最古 유골 ‘흥수아이’ 구석기인 아닐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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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 소장한 충북대 박물관 재조사
신석기인의 고질병 충치 다수 발견… 4만 년 전 화석으로 보기 힘들어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는 충치가 많은 치아 상태와 화석화가 안 된 뼈의 상태를 바탕으로 흥수아이가 구석기 유골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는 충치가 많은 치아 상태와 화석화가 안 된 뼈의 상태를 바탕으로 흥수아이가 구석기 유골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위아래 어금니 대부분에서 충치가 보입니다. 갈아 만든 음식이나 곡식을 먹는 신석기시대에는 흔하지만, (곡물 농사를 짓기 전인) 구석기시대에는 거의 보기 힘든 특징입니다.”

최근 만난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손에는 유골이 들려 있었다. 이는 30여 년간 ‘한국 최고(最古)의 구석기인 화석’으로 불려온 ‘흥수아이’의 두개골(頭蓋骨). ‘한국 1호 고(古)인류학 박사’인 그가 흥수아이 검증에 나섰다. 흥수아이를 보유한 충북 청주시 충북대 박물관에서 최근 이 교수를 만났다.

흥수아이는 사망 당시 나이가 약 4∼6세로 추정되는 아이의 유골로 초등학교 사회과부도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1982년 충북 청원군 가덕면에서 발굴됐다. 발굴팀은 인근에서 구석기 유적과 동물이 많이 발굴된다는 점을 근거로 4만 년 전 구석기 인류 화석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발굴에서 중요한 증거인 출토 지층 등의 엄밀한 기록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퇴골 등 긴뼈의 계측치도 누락돼 있었다. 구석기인이 아닐 가능성이 줄곧 제기됐지만,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고고학계 한 원로는 이를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가 ‘총대’를 멨다. 올해 1월 충북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흥수아이를 구석기 화석으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며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물관에 보관된 인골 원본의 대퇴골 길이나 치아 상태 등 인골 특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기초 조사에서 구석기인으로 보기 힘든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뼈의 화석화(무기질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통상 1만 년을 기준으로 화석 여부가 갈린다는 점에서 4만 년 전 뼈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다. 또 구석기 때는 매장이 매우 특수한 계층에서 이뤄져 부장품이 같이 발견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의문으로 지적됐다. 신석기 인류 고질병인 충치도 다수 확인됐다. 이 교수는 현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고고학계도 그에게 힘을 싣는 분위기다. 흥수아이를 보유한 충북대 박물관도 나섰다. 충북대 박물관 기획부장인 김범철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이 교수와 함께 신체 측정 등 조사에 착수했다.

이선복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동료평가(peer review)라는 학술체계를 거치지 않은 주장이 일방적으로 퍼져 지금에 이르렀다”며 “과학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법의인류학자인 진주현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및실종자확인기관 박사는 “흥수아이는 (학술체계를 거치지 않은 탓에) 국제 인류학계에서 아무런 위치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연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비판하는 쪽에서도 확실한 반증을 내놓을 수 없다 보니 논란이 오래 이어져 왔다”며 “이번에 학문적으로 논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1982년 흥수아이 발굴을 이끌었던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비판에 답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이상희 인류학과 교수#흥수아이#구석기 인류 화석#뼈의 화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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