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거짓말을 안해”… 늦깎이 목수는 오늘도 기다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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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중 ‘木가구展-미래의 전통’

양석중 소목장이 인천 강화군에 있는 자신의 ‘와우목공방’에서 나무를 다듬고 있다. 수년간 나무를 숙성, 건조시키는 그는 “목(木)가구는 시간과 인내의 결실”이라고 말한다. 와우목공방 제공
양석중 소목장이 인천 강화군에 있는 자신의 ‘와우목공방’에서 나무를 다듬고 있다. 수년간 나무를 숙성, 건조시키는 그는 “목(木)가구는 시간과 인내의 결실”이라고 말한다. 와우목공방 제공
16일 개량한복을 입은 양석중 와우목공방 대표(53)와 마주 앉았다. 서울대박물관 인류민속부의 목재(木材) 자료를 수리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느릿느릿 꾸밈없는 말투, 서글서글한 눈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디선가 나무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는 25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양석중 木가구전―미래의 전통’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2013년 그가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을 받은 ‘삼층장’ 등 30여 점의 목가구를 선보인다.

‘미래의 전통’은 뭘까. 2015년 프랑스 생테티엔 디자인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그의 찬탁에서 슬쩍 엿본다. 한국의 전통가구 찬탁을 현대 주거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변형한 가구다. 구조와 문양이 좌우 대칭을 이루는 전통가구 양식에서 벗어나 있어 현대 여성의 비대칭 커트헤어 같은 세련된 인상을 준다.

먹감나무 무늬를 살린 현대적 찬탁.
먹감나무 무늬를 살린 현대적 찬탁.
사용된 나무는 참죽나무 오동나무 먹감나무. 미학적 정수는 네 개의 서랍에 사용된 먹감나무 고유의 문양이다. “제가 사는 강화 바다에서 해가 떠 솟아오르는 모습이에요. 먹감나무의 결 그대로입니다. 나무가 상처받았거나 나이 들어 약해진 부분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남겼어요. 각각의 나무의 장점을 알아보고 그것을 살려내는 게 목수의 몫이겠죠.”

먹감나무 속 무늬는 나무를 사서 잘라봐야 비로소 안다. 수납장 하나 만들려면 두 그루가 필요한데, 스무 그루쯤은 사서 골라내야 한다. 그러고는 다듬고 기다린다. 목수의 일은 세월과 함께하는 노동이다.

도자기나 책을 올려놓던 사방탁자의 형태를 재구성한 와인 수납대, 입식(立式)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도록 높다란 다리를 단 콘솔도 만들었다. 과거 현재 미래, 동서양 느낌이 묘하게 섞여 있다.

그는 늦깎이 목수다. 서울대 인류학과 ‘운동권’ 학생이었고, 졸업 후엔 대우자동차에 ‘운동권 특채’로 들어가 다녔다. 회사 측으로부터 요구받은 생산직 노동자 감원을 마친 뒤 2000년 희망퇴직했다.

이동성을 높인 양면 작은 문갑.
이동성을 높인 양면 작은 문갑.
이후 밥벌이하러 선배의 사업을 도와주러 갔다가 그 회사 사무실 나무 문짝을 만든 것이 목수가 된 계기였다. 하도 집중하는 통에 문을 만들 동안 전화벨이 10여 차례 울린 것도 듣지 못했다. 되짚어 보면 직장 다닐 때에도 숲에 가면 나뭇가지들을 주워 와 액자를 만들던 그였다. ‘뭔가 가치 있는, 손에 만져지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배웠다.

그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나무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의 일은 변수가 많은데, 나무는 결과가 정직했다. ‘적재적소(適材適所)’란 말의 뜻도 깨달았다. 목수가 억지를 부려 자르고 다듬으면 가구가 된 뒤 결국 갈라지고 뒤틀리는 게 나무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남이 어떤 사람일까 의심할 필요도 없는 게 나무의 세계, 목수의 세계다.

찻잔을 수납하는 창호무늬 다기장.
찻잔을 수납하는 창호무늬 다기장.
그가 만든 다기(茶器)장은 전북 임실에서 제작된 창호지 문을 달고 있다. 문틀에는 손톱만 한 참죽나무 꽃잎이 달려있다. 차 마실 때 쓰이는 도구들이 창호지 사이로 깃드는 정갈한 바람과 나무꽃 내음을 맞을 것이다. 회화나무로 만든 작은 독서대, 느티나무에 옻칠한 작은 서안…. 가까이 두고 쓰다듬으면 나무의 곧고 참한 성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양석중#목수#양석중 목가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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