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남자의 꿈, 나만의 작업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10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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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영 기자의 로망 실현기

미국 롱아일랜드주 농부(위 사진)와 헝가리 출신 작가가 헛간에 꾸민 작업실. 짬짬이 이곳에 틀어박혀 각각 카누와 요트를 만든다고 한다.
미국 롱아일랜드주 농부(위 사진)와 헝가리 출신 작가가 헛간에 꾸민 작업실. 짬짬이 이곳에 틀어박혀 각각 카누와 요트를 만든다고 한다.

《호모 파베르(만드는 인간) + 호모 하빌리스(도구 쓰는 인간) +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내가 원하는 물건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면서 희열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지하 작업실에서 목공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사는 본보 강동영 기자도 그런 사람이다.》
서울 상계동 건물 지하에 꾸민 강동영 기자의 작업실. 360도 카메라로 찍은 여러장을 합성했다.

저녁 8시경, 화들짝 놀라는 길냥이를 진정시키며 컴컴한 지하실로 내려간다. 딸칵, 스위치를 켜면 이제 나만의 세상이 시작된다. 얼마 전 마련한 나만의 작업실이다. 이름하여 ‘오투공방’~팍팍한 일상의 산소(O2) 같은 공간이다.

나만의 작업실은 직장생활 내내 품어온 꿈이었다. 헐리우드 영화속 남자 주인공들이 개러지(차고)를 개조하거나 마당 한켠에 만들어놓은 작은집에 들어가 뚝딱 뚝딱 뭘 만들거나, 시거를 피우며 자신만의 공간을 누리는 모습을 볼때마다 그랬다. ‘나도 퇴근후 내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시간을 보내보고 싶다…’.

예고와 미대에서 그림을 그릴 땐 작업실을 갖는 꿈이 그리 큰 사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졸업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시간은 흘러 이렇게 오십 중반이 돼서야 작은 스튜디오를 갖게 됐다.

요즘 퇴근후 작업실에서 나는 나무를 만진다. 목공(木工)이다. 거슬러보면 6년 전 선운사 뒷산 차밭에서 얻어온 작은 나무판 하나가 작업실 꿈을 이루게 만든 시발점이었다. 당시 집에는 언제 산 건지도 모르는 무딘 대패 하나와 몇 가지 공구가 전부였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거친 나무판에 대패로 몇 차례 힘을 쓰니 예상 못한 고운 속살이 드러났다. 그 순간부터 나무의 세상에 빠져 버렸다. 야근수당은 인터넷 쇼핑과 나무가게, 공구가게에 뿌려졌다. 그 무시무시한 ‘지름신’도 등장했다. 장비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고 사고팔고를 거듭했다. 베란다가 어느덧 공방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둘러대자면, 이것도 다 공부다!

텅 빈 지하실에 조명을 설치하고 환기를 위한 나무 덕트를 제작했다. 작업대도 튼튼하게 직접 만들고 공방을 접는 후배에게 구입한 테이블쏘와 하나 둘 늘어 가는 장비, 소음으로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여러가지 목재 구입으로 넓었던 공간이 차츰 좁아지고 있다.
텅 빈 지하실에 조명을 설치하고 환기를 위한 나무 덕트를 제작했다. 작업대도 튼튼하게 직접 만들고 공방을 접는 후배에게 구입한 테이블쏘와 하나 둘 늘어 가는 장비, 소음으로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여러가지 목재 구입으로 넓었던 공간이 차츰 좁아지고 있다.
금년 3월까지 사용했었던 아파트 7층 베란다공방. 몇년동안 사용하면서 가득찬 자재와 장비들로 게걸음만 허용됐고 나무먼지와 텅 빈 지하실에 조명을 설치하고 환기를 위한 나무 덕트를 제작했다. 작업대도 튼튼하게 직접 만들고 공방을 접는 후배에게 구입한 테이블쏘와 하나 둘 늘어 가는 장비, 소음으로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금년 3월까지 사용했었던 아파트 7층 베란다공방. 몇년동안 사용하면서 가득찬 자재와 장비들로 게걸음만 허용됐고 나무먼지와 텅 빈 지하실에 조명을 설치하고 환기를 위한 나무 덕트를 제작했다. 작업대도 튼튼하게 직접 만들고 공방을 접는 후배에게 구입한 테이블쏘와 하나 둘 늘어 가는 장비, 소음으로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가구라고 만든 첫 작업은 거실 TV장. 기성품이 아닌 나만의 스타일로 구상하고 인터넷을 뒤졌다. 원하는 크기로 나무를 잘라 파는 곳에 주문을 넣었다. 그렇게 구한 나무를 베란다에서 가공하고 조립한 후 칠을 하고 마감을 했다. 다음은 5층 서랍장 2개. 아내의 첫 주문이었다.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저렴한 삼나무로 만든 서랍장은 다행히 지금도 잘 쓰고 있어 아내의 신뢰를 대변한다.

일이 슬슬 커진다. 장비가 늘어나니 선반 몇 개론 감당이 안 된다. 제대로 된 작업대와 수납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그걸 갖춰놓기 무섭게 수공구에서 목공기계로 눈높이가 쑥 올라간다. 아마추어의 경계를 벗어나는 단계다. 당연히, 액수도 몇만 원짜리에서 ‘0’이 하나씩 더 붙는다. 물론 아내에겐 늘 ‘중고품’이라 하고 ‘점포정리 헐값떨이’에 샀다고 둘러댄다. 기계가 늘어난 덕에 한동안 편하게 작업하지만 나무 자투리와 먼지, 소음 때문에 늘 조마조마하다.

그런 심정을 알아줬을까. 지난해말 아내가 “그렇게 재밌으면 작업실을 얻어서 해보라”고 말해줬다. 차마 입밖에 내지 못했던 남편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멀리 강원도 인제와 충남 지역까지 경치 좋은 전원지역 여러 곳을 알아봤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결국은 집(서울 노원구 아파트) 근처 5층 소규모 상가건물의 지하실을 찾아냈다. 바로 월세로 계약하고 퇴근 후 밤마다 베란다의 장비와 나무들을 옮겼다. 주말엔 온종일 작업대를 만들고 전기와 설비공사를 혼자 했다. 거의 석 달 만에 어지간히 모양이 갖춰졌다. 베란다 공방은 앞뒤 1.2m, 좌우 5m 가량으로 2평이 조금 넘었지만 이 지하 공방은 30평 정도에 천정 높이도 3.5m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덕분에 그간 꿈만 꿔오던 전문 목공기계도 중고로 구입하고 목공방의 모습을 제대로 꾸밀 수 있었다.

작업실에서 만든 스피커들을 한켠에 모아 두었다. 버려진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유럽에서 건너온 부품을 사용한 것도 있다. 위쪽은 10년 이상 쓴 낡은 컴퓨터용 스피커 부품으로 새롭게 디자인해 만든 음질 좋은 액티브 스피커.
작업실에서 만든 스피커들을 한켠에 모아 두었다. 버려진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유럽에서 건너온 부품을 사용한 것도 있다. 위쪽은 10년 이상 쓴 낡은 컴퓨터용 스피커 부품으로 새롭게 디자인해 만든 음질 좋은 액티브 스피커.
얼마가지 않아 집안의 가구는 더 이상 만들 것이 없어졌다. 멀쩡한 가구를 강제 퇴출시킬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 자연스럽게 가구에서 소품으로 영역을 넓혔다. 먼저 도전한 건 스피커. 전문적 경지는 엄두가 안나 풀레인지 단발짜리 스피커를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둥근 스피커 유닛을 구입하고 그것에 맞는 크기와 스타일로 만든다. 원칙 하나는 비싸지 않게 만드는 것. 또 다른 원칙은 나무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껏 20여 개의 스피커를 만들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하나 만들어 갈 때마다 ‘세계 유일 제품’이라는 자기 위안으로 변명 거리를 찾는다.

이어 생활 목공에 관심이 쏠렸다. 삼나무로 만든 식품건조기는 아내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걸로 맛있게 말린 고구마는 직장 동료들과도 나눠 먹었다. 요구르트도 만들고 청국장이며 낫토도 자급자족했다. 건조기 다음에 만든 것은 도마. 가내 목공의 단골손님이다. 몇 개를 만들어 친척들에게 돌렸다. 최근작은 ‘업그레이드 싱크대’다. 프라이팬 여러 개와 냄비들을 위한 편리한 수납공간이다. 아내는 특히 프라이팬 7개를 서랍식으로 꺼내 쓸 수 있게 된 걸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뜻밖에, 아내가 슬며시 바람을 잡는다. 독립 공간이 생겼으니 노래방을 꾸미는 게 어떻겠냐고…. 지하실 공방 일등공신의 요구인지라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해줬다. 작업실의 한쪽 벽에는 흰색 페인트를 칠해 100인치 이상의 크기의 스크린을 만들고 저렴한 프로젝터를 구입했다. 주말 저녁이면 우리 부부만의 영화관으로 변신하는 것.

작업실 월세는 20만원. 보증금 1000만원이야 나중에 돌려받으니 됐고, 비교적 저렴한 공간을 빌렸기에 부담은 적다. 장비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마련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새로 큰돈이 들어가진 않았다. 다만 지하 공간을 꾸미는 데 필요한 환기시설과 조명, 집진시설을 갖추는 비용이 꽤 들었다. 아내가 특별격려금을 하사해 큰 고민을 덜었지만, 공방 목수 체면이 있으니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썼다. 요즘 작업실 운영비는 2만 원 안팎의 전기료가 전부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집에서 가깝다는 점. 먼 곳에 마련했다면 한 달에 몇 번이나 갔을까.



현재 공방에는 작업대 2개와 테이블쏘, 밴드쏘, 마이터쏘, 자동대패, 탁상드릴 등의 목공기계, 여러 가지 수공구들이 있고 합판에서 원목까지 많지는 않지만 갖가지 나무들도 쌓여 있다. 이제 남은 건 식지 않는 열정으로 나무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 뿐. 주말이면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진다. 신문 둘둘 말아들고 공방에 간다. 망치 퉁탕거리다 보면 집에서 식사하라고 부른다. 에어건으로 먼지 툴툴 털고 밥 먹으러 간다. 그렇게 나는 진짜 목수가 돼가고 있다.

글·사진 강동영 전문기자 kdy184@donga.com

■어디서 어떻게 배웠나

정식 교육기관이나 기존 공방을 다니며 배울 수도 있지만 퇴근시간이 들쑥날쑥한 직장인은 언감생심. 내가 가장 큰 배움을 얻은 곳은 온라인 카페 ‘우드워커’다. 초보자부터 고수까지 언제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친절한 답을 들을 수 있는 ‘목공 아카데미’다.

유튜브 동영상도 빼놓을 수 없다. 검색만 잘하면 최고의 참고서다. 검색과 따라하기의 무한반복 덕분에 나도 이제 머릿속은 나름 고수, 손은 하수 ㅠㅠ.
■요즘 중년남성들이 많이 갖는 개인 작업실 종류

공동주택 : 베란다를 많이 이용. 초보자들이 취미로 시작하는 경우이며 소음과 먼지 등이 발생해 큰 작업은 어렵고 도마나 장식품 등 작은 소품 위주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 공간이나 창고를 저렴하게 빌리기도 한다.

단독주택의 미니 창고 : 도시 주택에서는 소음방지를 위해 판넬이나 합판 등을 이용해 자투리 공간에 작은 창고를 만들어 작업실로 만든다. 보일러실을 간단한 작업실로 이용하기도. 시골이나 전원주택인 경우 한결 큰 창고형태가 가능하고 콘테이너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실 전용공간 : 상가 임대나 전용건물로 지어 작업실로 사용하는데 대부분 목공을 전업 혹은 부업으로 삼으려는 경우다. 유료 공방 이용자를 유치하거나 아예 목공교육기관의 형태를 함께해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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