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권순활]‘통상대국’ 코리아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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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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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 이런 한국에 경제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

미국 외교전문잡지 포린어페어는 1960년 10월호에서 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혹평했다. 당시 한국의 수출액은 아이티와 비슷했고 필리핀의 20분의 1에 불과했다. 국민의 40%가 절대빈곤에 허덕였다. 세계은행이 한국보다 미얀마의 앞날이 더 밝다는 보고서를 내놓던 시절이었다.

수출 확대, 한국의 기적 1등 공신

우리나라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1962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87달러였다. 같은 해 필리핀과 태국은 약 250달러, 북한은 200달러, 인도와 스리랑카는 100달러였다고 사공일 무역협회장은 말한다. 작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48년 전의 239배인 2만756달러로 늘었다. 태국(4992달러) 스리랑카(2428달러) 필리핀(2123달러) 인도(1370달러) 모두 우리보다 1만5000달러 이상 낮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정한 북한의 1인당 소득은 661달러밖에 안 된다. 한국의 경제기적을 이끌어낸 1등 공신은 수출 등 무역 확대였다.

1964년은 우리 경제사에 길이 기억할 만한 해다. 정부는 그해 2월 수입대체 정책을 포기하고 수출지향 산업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대다수 개발도상국과 국내외 학자들이 후진국 발전모델로 수입대체 정책에 매달리던 시점에서 모험에 가까운 노선 변경이었지만 이 덕분에 우리 경제는 잠에서 깨어났다. 연간 수출액은 1964년 11월 30일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통상 한국’이 걸어온 길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무역액은 1974년 100억 달러, 1988년 1000억 달러, 2005년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한다. 박정희 정부의 수출 및 무역 입국(立國)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로 이어졌다. 몇 차례 정권교체도 있었지만 무역 중시 정책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일부 젊은이는 지금 그들이 누리는 풍요가 ‘하늘에서 떨어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기업인, 근로자, 공직자들이 눈을 바깥으로 돌리지 않고 밤잠을 설치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의 경제와 생활수준이 다른 개도국보다 나을지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요즘 일각에서 확산되는 분노와 불만과 증오, 국수주의적 정서와 자유무역에 대한 반감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통과됨으로써 우리 무역은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았다.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표결이 바람직하지만 이런 기대가 물 건너간 현실에서 더 끌지 않고 비준 절차를 마무리한 것은 늦었지만 불가피했다. ‘초식 정당’ 한나라당이 국익을 위해 오랜만에 집권여당의 책임을 다했다. 반(反)FTA 세력이 ‘날치기’ 운운하는 것은 상투적 낙인찍기일 뿐이다.

FTA 선점 효과 극대화에 국운 걸 때

최루탄 테러 속에서도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조순형 이회창 이인제 김용구 이영애 의원 등 나라의 앞날을 위해 찬성표를 던진 선진당 의원 5명의 이름은 기억할 만하다. 민주당에서 외롭게 한미 FTA 비준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던 강봉균 의원도 마찬가지다.

김수용 전 서강대 교수는 “인도 아르헨티나 멕시코 필리핀이 수입대체 대신 한국처럼 외부지향 정책을 추구했다면 한국의 획기적 수출 확대나 경제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선발자(先發者)의 이익’에 주목한다. 유럽연합(EU)과 인도 등에 이어 미국과의 FTA도 발효되면 기회의 창(窓)이 늘어난다. 선점(先占)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자력으로 가장 먼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신흥 경제국가로 꼽히는 한국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이제 ‘무역 한국’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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