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카페]남성 친화적인 백화점은 어디 없나요

  • 입력 2009년 9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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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현 중에는 ‘캐시 앤드 캐리(Cash and Carry)’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새로운 대부금융업체 이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나름대로 전통 있는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돈을 낸 다음에 (물건을) 가져가라’는 뜻인데, 미국 법안에서 시작된 단어입니다. 어떤 나라든 미국에서 무기나 탄약 등의 전쟁 물자를 사 가려면 대금을 선불로 지급하고 가져가도록 한 20세기 초 법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느닷없이 ‘캐시 앤드 캐리’를 끄집어 낸 것은 최근 이 단어의 새로운 용례(用例)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2년 전 결혼한 한 지인이 술자리에서 한탄하더군요. “백화점만 가면 정말 마누라의 ‘캐시 앤드 캐리’가 되는 것 같아”라고요. 물어 보니 항상 백화점만 가면 ‘돈만 내고(캐시), 물건을 날라 주는(캐리)’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자는 무릎을 치며 공감했습니다. “이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게 남자의 백화점 쇼핑을 정의하는 용어다”라고요. 최근 매스컴에서는 쇼핑을 즐기는 새로운 ‘남성 종족’이 등장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남성에게 백화점은 부담스러운 대상입니다.

백화점에서도 이런 문제점은 일찌감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성에게 물건을 팔지 않으면 매출 상승을 기대할 수 없기에 묘수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중 현대백화점은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이 백화점 무역센터점은 매장 안에 게임기를 두 대 비치해 ‘게임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미아점도 지난달 24일부터 3일 동안 ‘갤러그’ 등 추억의 1980년대 오락기 5대를 설치해 남성 고객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현대백화점 측은 “게임을 하려는 남성 고객들의 자리 쟁탈전이 치열해 예전 전자오락실을 보는 것 같았다”고 평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남성 전용 휴게실을 곳곳에 설치하는 등 백화점의 ‘남심(男心) 뺏기 전략’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이벤트는 결국 말 그대로 이벤트입니다. 잠시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캐시 앤드 캐리’ 신세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의 남성쇼핑객들이니까요. 남자들이 백화점 쇼핑을 싫어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치게 ‘여성 친화적’인 백화점 분위기도 큰 몫을 합니다. 쇼핑 상품에서부터 내부 인테리어, 점원에 이르기까지 백화점 주 고객층인 30대 이상 여성을 고려한 탓에 남성들의 ‘위화감’이 존재합니다. 이참에 백화점 ‘남성전용 쇼핑공간’을 작게라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가장 ‘여성 상위’였던 화장품 판매장들도 최근엔 속속 남성 전용 공간을 만들고 있는 추세니까요.

박재명 산업부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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