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선 100kg 드는 선수 적도선 100.5kg 들어 ‘중력의 비밀’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바벨이 유독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2008 베이징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 선수에게 경기 장소에 따라서 바벨 무게 가 달라지는지 물어보자 장 선수가 김기웅 국가대표팀 감독을 통해 전해온 대답이다. 과연 컨디션 때문일까. 과학자들은 중력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가 열리는 도시마다 실제로 중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 위도 높은 지방 기록 더 값지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무게가 100kg 나가는 바벨을 핀란드 헬싱키로 가져오면 무게가 약 400g이 더 나간다. 북극에서 100kg인 바벨을 들 수 있는 선수는 적도 지방에서는 100.5kg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지역별로 중력이 다른 이유는 위도와 날씨, 고도 등 여러 요인 때문이다.

지구는 완전한 구가 아니라 타원이기 때문에 자전으로 생기는 원심력이 위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중력은 반지름이 크고 원심력이 강한 적도에서 가장 작고, 반지름이 작고 원심력이 약한 극지방에서 가장 크다.

같은 지점에서도 고도가 높을수록, 대기 중에 공기분자가 많은 고기압 상태일수록 중력이 작아진다. 달과 태양의 위치 변화나 지구 자전축의 움직임에 따라 중력이 변하기도 한다.

아래에서 위로 바벨을 들어올리는 역도는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이다. 중력이 작을수록 당연히 힘이 덜 들 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질량힘센터 최인묵 박사는 “중력이 큰 곳에서 세운 기록일수록 더 값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일상생활에서는 중력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스포츠나 각종 산업이 점점 정밀해질수록 이런 차이를 정확히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높이뛰기도 중력이 큰 지역에서는 기록이 올라가기 어렵다. 이런 종목은 경기가 이뤄진 장소의 중력도 함께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견해다.

엔진과 선박 제조업, 건설현장, 발전소 등 압력이나 경도(硬度)를 측정하는 산업에서도 중력이 중요하다. 물체가 누르는 힘이나 단단한 정도는 중력을 알아야 계산할 수 있다. 다리를 건설할 때 차량이 가하는 힘을 정확히 계산하지 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 대전과 포항도 중력 차이

학교에서 배우는 중력(중력가속도)은 약 9.8m/s². 지표면에 물체가 떨어질 때 지구가 이만한 가속도로 그 물체를 잡아당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수점 둘째 자리 이하까지 측정하면 지역마다 100분의 1에서 10억 분의 1m/s²까지 차이가 난다.

표준연 질량힘센터가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대전과 경북 포항의 중력 차이는 약 0.0005m/s²다. 포항이 약간 더 높다. 위도는 비슷하지만 고도가 더 낮기 때문이다. 또 서울의 중력은 평균적으로 영국 런던보다 낮고 홍콩보다 높다. 위도 차이 때문이다.

이들 값은 ‘절대중력’이다. 특정 지점에서 추가 떨어지는 거리와 속도를 정밀한 레이저와 원자시계로 측정한 다음 중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보정한 것이다. 절대중력은 나라 전체 중력 값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스포츠나 산업, 학교 등에서는 더 싸고 조작이 쉬운 상대중력계를 쓴다. 두 지점 간 중력 차이를 비교해서 얻는다. 상대중력 값은 반드시 절대중력으로 보정해야 한다.

○ 독도서 첫 중력 측정 계획

지난해까지 국내에서는 중국과 일본 과학자들이 와서 측정해준 절대중력 값을 사용해 왔다. 절대중력계도 없었고 보정 기술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질량힘센터 우삼용 박사는 “한국 고유의 절대중력 값을 측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올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중력비교회의’에 참가해 측정기술과 중력 값을 검증받고 10월경 한국의 공식 국가표준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안에 독도의 절대중력도 측정할 계획이다.

최인묵 박사는 “성공하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되는 셈”이라며 “독도의 중력 변화를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면 자원이나 지질탐사, 지진 예측 등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하에 광물이 있거나 지각운동이 일어나면 중력이 변하기 때문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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