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성계는 지금 ‘36세 여성 경제학자 신드롬’

  • 입력 2009년 1월 21일 02시 54분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교수가 8일 프랑스 파리의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개발경제학적 관점에서 세계의 빈곤에 대처하는 방식을 강의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교수가 8일 프랑스 파리의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개발경제학적 관점에서 세계의 빈곤에 대처하는 방식을 강의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빈곤퇴치에 ‘보상’ 개념 도입

阿 등 발로뛰며 실증적 연구

최근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지각한 前총리 밖에서 들어

최근 프랑스에선 한 젊은 여교수가 혜성처럼 등장해 지식인 사회를 휘젓고 있다.

주인공은 에스테르 뒤플로(36)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프랑스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활동 중인 그가 8일 파리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의를 하자 프랑스는 물론 영국 언론도 이를 크게 보도했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신문과 방송의 인터뷰가 잇따르고 있고, 인터넷에선 그의 강의를 담은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뒤플로 신드롬’이다.

이 같은 반향은 그가 여성으로선 최초로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의했고, 콜레주드프랑스의 역대 교수 가운데 최연소라는 사실 때문이다. 파리에 있는 콜레주드프랑스는 프랑수아 1세가 1530년 설립한 고등교육기관으로 당대 최고 학자들이 강의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레몽 아롱, 롤랑 바르트, 앙리 베르그송, 피에르 부르디외, 미셸 푸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등이 이곳에서 강의했다.

이날 강의에는 좌석 수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강의실 바깥으로 밀려났다. 도미니크 드빌팽 전 총리도 늦게 도착해 바깥에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신동의 귀환인가’라는 표현으로 뒤플로 신드롬을 전했다.

일부 언론은 더 나아가 ‘장폴 사르트르로 대표되던 프랑스 지식인의 이미지를 뒤플로가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3일 ‘사르트르 비켜라, 프랑스 지성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는 제목으로 “담배를 물고 카페에 자주 드나드는 모습이 전형으로 여겨지던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새로운 종류가 나타났다”면서 “새로운 지식인은 찰랑거리는 머릿결에 목을 훤히 드러낸 셔츠를 입고 방송국을 자주 방문한다”고 전했다.

뒤플로 교수는 프랑스의 명문 앙리 4세 고등학교와 고등사범학교(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간 뒤 32세에 MIT 교수로 임용됐다. 전공은 ‘개발경제학’이다. 그는 “세계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데도 왜 대부분 실패하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개발경제학이 경제학의 한 분야로 생긴 것은 10년 전쯤이며 뒤플로 교수는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사람들이 ‘프랑스 지식인’에게서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다른 면모를 보인다. 우선 책상머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추상적 이론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인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마을을 돌아다니며 빈곤 퇴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인지 찾는 데 공을 들인다.

여러 마을의 사례 분석을 통해 그가 찾아낸 한 가지 사실은 경제학자들의 선입관을 뒤집으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자녀들의 예방접종은 생명과 직결된 것이므로 주부들이 아무런 보상 없이도 열심히 접종을 시킨다는 게 기존 통념인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예방접종을 시키는 주부들에게 콩을 1kg씩 나눠준 마을들의 접종률이 그렇지 않은 마을들의 3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돈 50센트에 불과한 이 보상이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 뒤플로 교수는 “교육의 중요성을 무조건 강조하기보다 공짜 식사나 교복 지급 같은 보상을 해주는 게 출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경제학자들은 추상적 이론에만 매달려선 안 되고, 경제학을 좀 더 인간적인 과학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유력한 지식인 대열에 오른 뒤플로 교수는 포린폴리시가 지난해 5월 선정한 ‘2008년 세계 100대 지성’에 자크 아탈리, 움베르토 에코, 위르겐 하버마스, 바츨라프 하벨 등과 함께 선정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말 ‘세계의 8대 젊은 경제학자’를 선정하기 위해 각국 경제학자들에게 추천을 의뢰했을 때 가장 많은 추천을 받기도 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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