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심심한 포장도로는 싫다” 모험질주

  • 입력 2007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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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개의 바위가 앞을 가로막았다. 경사가 미끄럼틀 정도는 돼 보인다. 정면 돌파냐 둘러갈 것이냐.

아이들을 차에서 내리게 한다. “아빠 가지 마.” 아홉 살 연주는 울음을 터뜨린다. 가속 페달을 밟아 보지만 삐죽 튀어나온 돌을 넘지 못하고 헛바퀴만 돈다. 일곱 살 우성이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후진한 뒤 튀어나온 돌이 없는 쪽으로 다시 공략한다. 차가 바위 위로 오르기 시작하자 차체가 똑바로 일어날 듯이 뒤로 기울어진다. 이번에는 성공이다. 다섯 살 지윤이는 “차가 방귀 뀌고 올라간다”며 좋아한다. 연주의 얼굴도 환해졌다. 4일 오후 경기 양주군 광적면 비암리 탱크 훈련장에서 양해일(43·태풍미디어 대표) 이현철(38·대한생명 수도법인지점 수석팀장) 씨 가족은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주말이면 ‘길이 아닌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비포장 험로를 달리는 오프로드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이다. 이들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기 위해, 가족과 함께 자연을 체험하기 위해, 핸들에서 전해져 오는 ‘손맛’을 느끼기 위해 비포장 험로를 찾아 나선다.》

오프로드에 빠진 사람들

○스트레스는 가라

연세성형외과 김균태 원장은 7월 선배 의사와 함께 강원 평창군 진조리에서 열린 ‘랜드로버클럽코리아’ 동호회 정기 모임에 다녀온 뒤 오프로드에 빠져들었다. 그는 갖고 있던 두 대의 차 중 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팔고 2004년식 랜드로버 디스커버리2를 2800만 원에 샀다. 김 원장은 “차를 타고 산길을 달리는데 일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잡념이 싹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프로드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의사, 변호사, 개인사업자, 기업 임원 등 소득이 높은 대신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직업 종사자들이다. 오프로드를 시작하는 이유도 대부분 김 원장처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다.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

오프로드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은 자연이다. 시계수입회사인 우림T&C 김윤호 대표는 “오프로드를 달리다 보면 포장된 도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양해일 대표는 37세에 얻은 아들 우성이와 함께 자연을 느끼기 위해 2004년부터 오프로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양 대표는 “감수성을 갖춘 강한 사람이 되게 하려면 자연에서 키워야 한다”며 “나는 등산도 좋아하지만 우성이가 어려서 높은 산에 오르기는 힘들고 아이와 함께 산과 계곡에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오프로드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물을 만나면 우성이가 ‘아빠 갈 수 있어?’ 하고 물어보는데 그런 걸 넘다 보면 도전의식과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연과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현철 팀장은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매력 때문에 오프로드에 빠져들었다. 그가 핸들을 잡으면 두 딸 연주와 지윤이도 뒷좌석에 탄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오프로드는 험한 길을 달리지만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깊은 물을 건너다 빠지거나 옆으로 넘어져 차가 망가지는 사고는 있어도 사람까지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4륜 구동 SUV만 있으면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다. 4륜 구동 SUV 중에서도 차체와 프레임이 하나로 연결된 모노코크 보디보다는 프레임이 따로 떨어져 있는 프레임 보디로 된 차가 험한 길을 달리기에 더 좋다.

입문 단계에서는 프레임 바디로 된 4륜 구동 국산 SUV면 충분하다. 갤로퍼, 코란도, 렉스턴, 쏘렌토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오프로드를 즐기다 보면 더 험한 길을 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더 성능 좋은 차량을 찾게 된다. 목돈을 들여 국산 SUV를 튜닝하거나 외제 SUV를 사는 이유다. 튜닝은 당장은 돈이 적게 들지만 대부분 자동차관리법 위반이다. 차량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차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정도의 큰 타이어를 끼워야 하는데 이런 경우 수백 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험한 길을 달리기 때문에 기름도 많이 먹고,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 가솔린 차량인 1992년식 레인지로버를 모는 양해일 대표는 주유비 80만 원에 수리비 등을 합쳐서 월 100만 원 정도 든다고 한다. 김균태 원장의 차는 디젤엔진이어서 주유비가 월 15만∼20만 원 정도 들고, 오프로드 후에 2번 고장이 나서 수리비로 3개월에 23만 원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출퇴근용 차량은 따로 있다.


촬영: 박영대 기자

양주·파주=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그들이 주말 탱크훈련장에 가는 이유는…

4륜 구동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이 있다면 이번 주말 오프로드를 달려 보자. 차가 망가질까 봐 포장이 잘 된 도로 위만 달리는 것은 SUV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경기 파주시 파평면 파평산 탱크 훈련장과 양주군 광적면 비암리 탱크 훈련장은 평일에는 탱크가 뿜어내는 굉음으로 요란하지만 주말에는 비포장 험로를 달리는 오프로드 동호회 회원들의 차지가 된다. 가파른 경사와 움푹 팬 웅덩이가 곳곳에 있어서 난도가 높다. 평소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아 숲이 정글처럼 우거져 있다.

충남 금산군 양각산에 있는 오프로드 파크는 양각산을 중심으로 임도(林道)가 길게 뻗어 있고, 다양한 코스가 있어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즐길 수 있다. 전국 어디서든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어 전국 단위 오프로드 동호회 모임이 많이 개최된다.

튜닝을 하지 않은 국산 SUV가 가기에는 강원 평창군 삼양대관령목장이 좋다. 목장 능선을 타고 이어진 27km 순환도로는 시골길처럼 평탄해 보이지만 곳곳에 물이 고인 웅덩이가 있어서 초보자들이 오프로드의 ‘손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차가 빠지거나 고장 났을 때 관리사무소로 연락하면 구조해 주기 때문에 동호회에 가입하지 않은 초보자가 혼자 가기에도 좋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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