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탄신 242주년 대담…"'목민심서 개혁' 필요할때"

  • 입력 2004년 8월 2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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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그림)의 탄신 242주년이 되는 날. 성리학적 명분론이 횡행하던 시절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했던 다산의 사상은 정체성과 정통성 논쟁을 빚고 있는 최근의 우리 현실에 새롭게 다가선다. 6월 다산연구소를 출범시키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다산사상 보급운동에 나선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다산사상을 연구해온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사)의 대담을 통해 다산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조명해본다.》

● 유배지에서 현실에 눈 떠

▽박석무=오늘날 우리는 경제개혁, 노사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 등 온갖 부문의 개혁을 얘기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민족의 대표적 개혁사상가인 다산의 개혁정신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산의 개혁사상을 이해하려면 경세유표(經世遺表)와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알아야 한다. 경세유표가 국가경영의 최고 수준 마스터플랜이라면, 목민심서는 이를 현실화시키는 공직자용 지침서다.

▽이영훈=다산사상의 진수가 잘못 알려져 있다. 혹자는 다산의 사상을 두고 ‘아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원조’라고도 평가한다. 이는 다산사상의 일부분만 본 것이다. 전국의 토지를 촌락단위로 나눠 공동노동, 공동분배하자고 했던 여전론(閭田論)은 다산이 혈기방장했던 30대 때의 생각이다. 40대 이후 18년간 귀양살이를 하며 농촌의 현실을 지켜본 뒤 다산의 사상은 많이 바뀐다. 그 핵심은 국가와 사회의 분리, 정치와 경제의 분리, 공(公)과 사(私)의 분리다. 다산은 국가경영에선 신아지구방(新我之舊邦)이라 하여 국가의 틀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할 것을 주장했지만 사회에 대해선 기존질서를 존중하는 순속(順俗)을 강조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다산연구소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오른쪽)과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박 이사장은 “다산의 현실인식이 담긴 목민심서를 현재의 개혁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경제사학자인 이 교수는 “다산이야말로 조선의 아담 스미스”라고 그의 경제관을 높이 평가했다.- 권주훈기자

▽박=노무현 정부 초에 인수위에서 ‘다산 식으로 개혁해야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 나는 ‘경세유표를 계획하다간 망한다. 목민심서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경세유표가 혁명적 개혁이라면 목민심서적 개혁은 기존체제를 존중하면서 백성의 기운을 회복시키는 개혁이다. 목민심서가 완료돼야 경세유표로 갈 수 있다.

● 국부 증진이 백성의 도덕성을 보장

▽이=다산은 젊을 때 ‘국가는 백성의 아버지’라 생각했다. 그래서 국왕이 자식 같은 백성의 살림살이에 관심을 갖고 골고루 잘 살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왕이 대중을 대신해 큰 덕을 닦으면 나라는 절로 화평하고 풍요로워진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중세적 유교사상이다. 다산은 후대에 이로부터 벗어났다. 국가가 부국강병과 인프라 구축에 힘을 기울이면 백성의 살림살이는 저절로 나아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박=무위이화는 공자가 요순(堯舜)의 정치를 일컬은 것인데 다산은 후기에 공자의 해석을 후대 사람들이 잘못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요순시대 정치에 대해 신하들이 다 한 것처럼 해석함으로써 정작 신하들이 제대로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 끊임없이 독려한 임금의 역할은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그런 의미에서 다산을 한국의 아담 스미스라 해석할 만하다. 자연법적이고 이신론(理神論)적인 균형을 믿어서 국가가 간섭하지 않으면 시장은 최적의 균형을 달성한다는 사유체계를 두 사람에게서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 평등과 질서를 명확히 구분

▽박=다산은 사회현상의 불평등을 인정했다. 인간은 타고난 재주와 노력하는 습성에 따라 불평등해진다는 것이었다. 목민심서 5장에 등장하는 변등(辨等)은 평등과 질서를 명확히 구별한다. 사람이 아무리 평등하더라도 이조판서와 이조참의의 역할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군과 검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평등만 강조하고 질서의 중요성은 간과하는 것 같다.

▽이=집권여당 국회의원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자’고 하던데 이들이 말하는 ‘세상’이 국가인가 사회인가. 정치가 사회에 간섭해 새롭게 하려는 것은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경계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보다는 법을 엄정히 세워 집행하고, 관료시스템을 정보화하고, 행정제도를 서비스화는 국가시스템의 선진화가 더 중요하다.

▽박=요즘 정부는 국부의 증진 없이 도덕성만 요구하는 것 같다. 제도 구축과 인프라 정비, 기술개발은 외면하고 도덕주의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요즘 강조되는 사회정의 실현이니 역사바로잡기는 윤리성을 강조한 중세적 정치관이다. 다산은 균산(均産)이 아니라 증산(增産)에 초점을 뒀다. 그는 공허한 도덕 논쟁을 젖히고 백성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부유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정작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박=동아일보는 1930년대 가혹한 식민지 상황에서도 다산 서거 100주년에 맞춰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산사상 부흥운동을 펼쳤다. 당시 특집 기사를 시리즈로 게재하고 대대적 국민모금운동을 전개해 여유당전서 출간의 산파역을 했다. 그러나 다산이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들어서다. 나라가 어려움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다산학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할 때다.

정리=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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