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의 비밀’ 밝혀진다…과학자들 형성과정 규명

  • 입력 2004년 3월 23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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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적으로 미라가 잇따라 발굴되고 있다.

21일 대전 보문산에서 묘지를 이장하던 중 450여년 전 조선 중기 미라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또 베트남에서 촬영된 승려 미라 사진 한 장이 16일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공개돼 화제를 일으켰다.

‘미라’ 하면 내세의 부활을 꿈꾸며 온몸을 방부 처리해 만든 이집트 왕가의 미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론 알프스에서 발견된 5300년 된 얼음인간 ‘외치’, 대전 보문산의 미라 등 시신이 썩지 않는 환경 때문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미라도 알려져 있다.

미라란 오랫동안 원형에 가까운 형상을 보존하고 있는 인간(또는 동물)의 시신으로 정의된다.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미라는 대부분 누운 모습으로 발견된다. 누운 자세가 가장 편한 자세인 점을 생각하면 사람이 기력이 다해 사망할 때 눕게 된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베트남 미라는 다르다. 양발을 반대편 넓적다리 위에 얹고 앉은 ‘결가부좌’ 자세다.

화제의 주인공은 280년 전 앉은 채 입적했다고 알려진 누 트리라는 승려다. 미라가 보관된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이 승려는 1723년 사망해 베트남 북부 바크 닌의 티우 탑에 보존됐다”고 밝혔다.

몸에는 특수 방부제가 칠해져 있으며 내부 장기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단지 한쪽 눈에 구멍이 나 있고 두 팔꿈치 아래가 부러져 있다.

사실 불교계에서는 ‘좌탈(坐脫)’이라 해서 앉은 채 수도를 하다가 입적한 승려들의 사례가 그렇게 낯설지 않다. 지난해 12월 백양사 서옹 스님의 좌탈 사진이 세간에 공개돼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 승려 미라는 상황이 다르다. 앉은 모습 그대로 280년간 보존됐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미라를 연구해 온 고려대 의대 병리학교실 김한겸 교수는 “오랫동안 결가부좌를 튼 채 수행해 온 승려들의 경우 좌탈이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신은 사망 후 8시간 정도 지나면 경직된 근육이 풀리기 때문에 앉은 자세가 오래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망하면 근육은 일시적으로 이완 상태를 보이다가 점차 수축하면서 뻣뻣하게 굳는다(사후 경직). 이 현상이 보통 8시간을 전후해 사라진다는 것. 그렇다면 좌탈을 했을 때 무려 수백년간 자세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도 중국 대만 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좌탈한 승려가 미라로 보존된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김 교수는 일본 미라 연구를 통해 한 가지 단서를 제시했다. 그는 “일본에 20여구의 200년 된 승려 미라가 발견됐다”며 “아예 살아 있을 때 미라가 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식이요법. 솔가루나 물 몇 모금 정도의 극도로 제한된 음식을 섭취하되 활동은 평소와 동일하게 한다. 몸에서 단백질 지방 등 영양분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한 과정이다.

다음으로 미생물의 활동으로 인한 몸의 부패를 막기 위해 살균작용이 뛰어난 옻나무 수액을 차로 달여 마신다(한편에서는 옻의 수액과 기름에 절인 붕대를 몸에 감는다는 설명도 있다). 이후 석실에 들어서 좌선을 하는데 이때 촛불을 켜 주변 공기를 건조시킨다.

그 결과 몸은 수분이 거의 제거되고 뼈와 피부만 남은 미라 형태로 변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 기간이 1000일 또는 10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며 “이미 몸이 굳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대로 입적을 한다면 수백년간 앉은 채 보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승려 미라는 우리에게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等身佛)’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의 한 절에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 부처님께 바치면서(소신공양) 타다 남은 몸에 금물을 입힌 스님의 얘기가 담겨 있다. 물론 실화가 아닌 상상력에 근거한 작품이다.

그런데 소신공양을 하지는 않았지만 좌탈한 채 등신불(승려 미라)이 된 한국인 승려 얘기는 전해지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태진 스님(철학박사)은 “신라의 왕자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제일의 고승이 된 김교각(696∼794) 스님의 등신불이 중국 안후이성 사찰에 있다”고 말했다. 사찰측은 스님의 몸이 3년간 썩지 않아 금물을 입히고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에는 국내 한 단체가 이 등신불을 들여와 전시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태진 스님은 “시신에 금물을 입히는 이유는 일반인이 봤을 때의 충격을 덜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등신불의 명맥이 이어져 왔으나 조선시대의 불교 배척정책과 많은 전란 탓에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등신불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오랜 수행의 경지를 직접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세인들이 수양할 때 교훈으로 삼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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