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국민은 지금도 ‘타협’을 원한다

  • 입력 2004년 3월 12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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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그래도 전진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투표의 가결을 선언하면서 국회의장이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그렇다. 한국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지만, 이것 또한 한국 정치 발전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제 여야간의 대치나 대통령 권한 정지로 나라가 흔들릴 정도로 허약한 나라가 아니다. 헌법적 절차는 지켜질 것이고, 국민의 일상생활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 정치발전 계기돼야 ▼

물론 17대 국회의원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벌어진 대통령 탄핵 사태는 여야 대립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사회의 여러 집단들도 친노(親盧)와 반노(反盧)로 갈라져 극심하게 대립할 것이다. 이번 총선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방불케 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올인 전략’에 야당도 사생결단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노무현 대통령이 원했던 대로 대통령 재신임 문제와 연계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선 탄핵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분분할 것이다. 야당이 적시한 선거법 위반, 부정부패, 국정 혼란의 세 가지 이유가 과연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될 수 있느냐를 둘러싼 논란이다.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헌재의 결정을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대통령제 권력구조에서 의회에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이유를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재임 중 내란,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상의 소추가 면제된다. 이런 대통령에 대한 견제의 수단으로 의회의 탄핵권을 인정함으로써 정치적 심판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사태가 처음이지만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이미 여러 번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야당은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이 찬성하는 국민보다 두 배나 많았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여당은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 국민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국민보다 두 배나 많았다는 사실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양쪽이 모두 한 발짝씩 물러나 타협하기를 다수 국민은 고대했다. 이러한 국민의 염원은 탄핵안의 가결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정치권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가. 자존심과 명분을 앞세운 도덕주의 정치에 그 원인이 있다. 서로가 도덕적 기준을 내세우면서 서로를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도덕주의 정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잘못을 종종 저지른다. 첫째, 자기는 옳고 남은 틀리다고 주장하려다 보니 자기의 허물에 대해서 관대하다. 둘째, 이와 반대로 남의 허물은 매우 엄격하게 재단하고 비난한다. 셋째,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회적 분란을 일으킨다. 여야는 모두 이러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르지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는 여전히 불황이고, 사회적 갈등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수많은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자살, 대형사고 등으로 민심이 흉흉하다. 북한 핵 문제, 이라크 파병 등 대외 문제도 심각하다.

▼국익위한 성숙한 자세 보여주길 ▼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치권의 자중과 성숙한 자세가 어느 때보다도 긴요하다. 야당은 탄핵을 정당화하면서 대행체제가 더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이제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여당은 탄핵에 반대하면서 산적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여당도 정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총선 결과는 어느 쪽이 국민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이와 같은 성숙한 자세를 보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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