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싱글 남녀가 말하는 ‘싱글에 대한 오해들’

  • 입력 2004년 3월 11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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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싱글들의 전성시대’다. ‘유로 RSCG 월드와이드’가 선정한 올해 10대 트렌드 중 하나는 ‘독신자 사회’의 도래다. 결혼과 핵가족에 근거한 서구사회의 중심이 독신자 사회로 전환한다는 것. 미국의 성인 중 결혼한 사람은 59%에 불과하다.

한국은 어떤가. 200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30세 이상 인구 가운데 미혼, 이혼자,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은 전체의 19.2%. 1995년(17.3%)보다 늘었다. 특히 30, 40대에서 미혼자 비율은 95년 10%에서 2000년 16.4%로 증가했다. 1인 가구 규모는 전체 가구의 15.5%인 222만4000가구였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독신’을 테마로 한 카페만 670개다. 19일부터는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서 28∼33세 미혼여성들의 일상을 다룬 리얼리티 쇼 ‘싱글즈 인 서울’이 시작된다.

‘싱글’을 트렌디한 소재로 다룬 대중매체에서는 혼자 레포츠나 싱글 파티에 나가는 것을 즐기고 패션 외식 레저 등 다양한 산업에서 유력한 소비층으로 부상한 ‘화려한 싱글’론이 대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결혼적령기를 넘어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태에서 혼자 사는 ‘원조 싱글’들은 ‘화려한 싱글’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범주에 해당하는 남녀 5명을 인터뷰해 같은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을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결혼 경험이 없는 김우기씨(48·사업), 엄정아씨(34·여·SS웨딩컨설팅 매니저), 이은주씨(37·여·자영업), 이혼 후 10년간 혼자 산 남기주씨(38·쏠로닷컴 대표), 5년째 혼자 사는 최진희씨(40·여·가명·교사)가 인터뷰에 응했다. 아래 대담에서 ‘첫쏠(첫 솔로)’은 결혼경험이 없는 독신, ‘돌쏠(돌아온 솔로)’은 이혼 후 혼자 사는 독신을 가리킨다.

○화려한 싱글?

▽첫쏠 여1=화려하다니. 뭐가? 동의할 수 없죠. 독신인 것에 불만은 없지만 ‘화려한’이라는 수사가 붙는 건 억지스러워요. 매스컴에서 만들어낸 이미지 같아. 경제적으로 아무리 윤택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돌쏠 남=독신들이 가고 싶은 데 맘대로 가고, 한 여성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그런 면이 커플들의 눈엔 ‘화려해’ 보이나 보죠. 그런데 이 사회가 독신자를 대하는 태도는 참 이중적이예요. 화려하다고 부추기는 한편으로 컵라면처럼 1회용 패스트푸드를 독신자를 대상으로 만들었다고들 하질 않나. 그럴 때 기분 나빠요. 독신이 뭐 게으름뱅이입니까.

∇첫쏠 남=독신이 화려할 건 없고 자유스러울 뿐이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런 자유가 30대까지는 좋지만 중년이 넘으면 메리트가 떨어져요.

▽첫쏠 여2=‘화려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고 그냥 편한 거죠. 누구한테 맞춰 걷는 걸음이 없고 그냥 내가 걷는 길이 내 길이 되는 거니까.

○사랑보다 일?

▽첫쏠 남=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어요. 독신이어서 일중독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자기 일을 좋아해야 할 것 같긴 해요.

▽첫쏠 여2=그게 대립하는 개념인가? 사실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이 ‘왜 결혼 안했어요?’ ‘일만 하지 말고 연애도 좀 하지’ 그런 말들이에요. 그저 ‘적령기’를 넘겨 혼자 있게 된 것일 뿐인데 왜 그걸 늘 안하거나, 못하거나로 판단하는지….

▽첫쏠 여1=한번도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결혼 후에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랑이 우선이 될 수도 있고. 그걸 어찌 알겠어요.

▽돌쏠 남=저는 되레 결혼생활 중일 때 일이 더 우선이었어요.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니까. 회사를 이혼 후에 그만두고 새 일을 시작했는데 결혼생활 중이었다면 안정된 직장을 뛰쳐나올 생각을 못했겠죠.

○노후보다 현재를 즐긴다?

▽돌쏠 남=전혀 아녜요. 제가 운영하는 ‘쏠로닷컴’ 회원들을 보면, 커플들보다 보험에 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나중에 계속 독신으로 살아도 공동체 생활이 가능한 실버타운을 만드는 것도 논의 중이고요. 커플들도 인생 후반기 어느 시점에선 독신이 될텐데,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재 독신인 사람들이 더 강하게 하는 것 같아요.

▽첫쏠 여1=제겐 현재를 즐긴다는 말이 더 맞아요. 결혼에 대한 압박이 살짝 풀어져서 그런지 저축도 20대 때보다 덜하게 되고…. 가끔 미래가 불안하지만 10년 전에도 사회가 지금처럼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잖아요.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자는 주의죠.

▽돌쏠 여=저는 결혼생활을 할 때보다 지금이 더 노후가 걱정돼요. 소득공제를 염두에 두고 장기주택마련저축을 2개나 들었는데 이혼한 사람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어찌나 화가 나던지…. 세제도 독신, 이혼자가 급증하는 사회를 반영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성욕은 어떻게 하느냐고?

▽첫쏠 남= 참기 힘들 만큼 성욕을 느낀 적은 없어요. 다 감당할 만한 수준이죠.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친밀감에 대한 욕구예요. 50, 60대에도 계속 독신이면 심리적 안정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커뮤니티 활동도 많이 하고 볼룸댄스를 배우고 모터사이클 동호회도 나가고 일부러 바쁘게 지내는데,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요.

▽돌쏠 남=독신자들의 성이 문란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아요. ‘쏠로닷컴’ 회원들 중 이혼 후 불쾌하게 치근대는 유부남들이 많다고 고민하는 여성들도 있구요. 독신끼리 연애하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이상하게 보는 시각도 많고…. 성욕을 느끼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그것의 해소가 갈등 중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아요. ‘누구나 예상 가능한 방법’으로 처리하면 되는 거죠.

▽돌쏠 여=24시간 365일 성만 생각하면 비정상일 테고, 성욕을 느끼는 주기와 패턴이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최소한의 자기 관리 능력, 감정 조절능력만 있으면 문제될 게 없는 거죠.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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