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한마리에 데이터 400개… 인류 희귀병 비밀 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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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변형 쥐’ 연구 활발

1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사업단 연구실에서 김태호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 연구원이 두 마리의 유전자 변형 쥐를 들고 있다. 대사질환을 연구하기 위해 개발된 쥐로, 왼쪽은 보통 쥐보다 비만이 심하고 오른쪽 쥐는 마른 특성을 보이고 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1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사업단 연구실에서 김태호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 연구원이 두 마리의 유전자 변형 쥐를 들고 있다. 대사질환을 연구하기 위해 개발된 쥐로, 왼쪽은 보통 쥐보다 비만이 심하고 오른쪽 쥐는 마른 특성을 보이고 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복진웅 연세대 의대 교수는 쥐(마우스)의 청각을 연구하는 ‘쥐 이비인후과’ 의사다. 연구는 먼저 쥐가 제대로 듣는지 확인하는 청각 검사에서 시작한다. 사람처럼 귀에 소리를 들려주고 들릴 때마다 손(앞다리)을 들게 하면 쉽겠지만, 아무리 재주 많은 쥐라도 불가능하다. 그 대신 마취시킨 쥐의 귀에 작은 헤드폰을 통해 소리를 들려주고, 머리에 연결한 전극 세 개를 통해 소리에 반응하는 뇌파를 분석하는 방법을 쓴다. 보통 쥐는 조용한 방과 유사한 수준인 30dB의 소리에도 뇌파가 발생한다. 하지만 특정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쥐는 길거리 소음 수준인 60∼70dB에서도 뇌파가 잘 나오지 않고, 나와도 불규칙하다.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험에 사용된 쥐는 ‘난청’ 연구를 위해 특별히 유전자를 변형한 쥐다. 유전자 변형 쥐는 특정 유전자만 기능하지 못하도록 딱 하나의 유전자만 바뀐 채 태어난다. 이런 쥐의 특성을 연구하면 바뀐 유전자의 기능을 자세히 추정해 낼 수 있다. 유전질환 치료법이나 약을 개발하는 데에도 자주 사용된다. 현재까지 인류의 청각 질환 관련 유전자는 발견된 것만 100개가 넘는다. 모두 유전성 난청 등 희귀질환과 관련이 있지만 인공와우를 착용하는 방법 외에 현재로서는 치료법이 없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유전자 변형 쥐를 이용해 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복 교수는 “잘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 건강한 삶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선진국 중심으로 감각기관 연구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이 이런 쥐를 만들어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고 있다. 현재까지 169건의 유전자 변형 쥐를 개발했고, 이 가운데 95건은 정밀한 ‘건강검진’을 거쳐 표준화된 데이터를 얻어 쥐의 표현형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국제 프로젝트인 ‘국제마우스표현형분석컨소시엄(IMPC)’에 등록까지 마쳤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런 쥐는 8500건이 등록됐다.

한국은 최근까지 관련 연구 분야의 불모지였지만 사업단이 2013년 발족하면서 인프라와 분석 기술을 마련해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지금은 어엿한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다.

유독 쥐를 국제 데이터베이스로 등록하는 이유는 실험동물로서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과 쥐는 99%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의 유전자가 질병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구하기에 적합하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쉽고 윤리적 문제도 적은 편이다. 습성도 잘 알려져 있고 데이터도 많이 쌓여 있다. 번식도 잘된다. 쥐는 체중이 20g 정도로, 작은 초밥 하나 정도의 무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류 질병의 비밀을 가득 담은 ‘살아있는 데이터베이스’인 셈이다.

유전자 변형 쥐 개발은 까다로운 작업을 필요로 한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기도 하고, 최근 생명과학계에 널리 쓰이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이용해 원하는 목표 유전자를 교정한다. 목표로 한 쥐를 만들면 그때부터는 특성(표현형)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먼저 ‘기본검진’을 통해 대략적인 표현형을 확인한다. 김형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자원센터장은 “쥐 한 마리에서 나오는 분석 데이터 수만 400여 개”라며 “비교기준이 되는 쥐(와일드타입)와 유전자 변형 쥐를 암수 각각 7마리씩 총 28마리를 검사하기 때문에, 1종의 유전자 변형 쥐에서만 약 1만2000개의 데이터를 얻는다”고 말했다. 책 한 권을 채울 분량이다. 이 작업에 2개월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정밀검진’도 해야 한다. 각 분야 전문가가 검진에 참여한다. 복 교수 연구팀이 청각 검사를 맡고 골격계는 최제용 경북대 실험동물자원관리센터장팀이 맡고 있다. 쥐를 촬영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이크로CT(컴퓨터단층촬영)로 뼈의 양을 파악하고 조직을 분석하며, 미네랄화 정도를 측정한다. 골 관절염이나 뼈엉성증(골다공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쥐가 비만 등 대사질환에 걸렸는지 판단하는 일은 성제경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장(서울대 수의대 교수)팀과 최철수 가천대 교수팀이 맡는다. 비만은 지방량 증가 등으로 눈에 쉽게 띄지만, 병의 진행 정도와 발병 원인을 깊이 있게 연구하려면 에너지 소모와 섭취 등 보다 복잡한 표현형을 분석해야 한다. 사업단의 연구는 이런 복잡하고 정교한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사업단은 유전자 변형 쥐 제작과 분양, 표현형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마우스종합서비스포털(MOP)을 만들었다. 원하는 유전자를 입력하면 관련 유전자 변형 쥐 정보를 얻거나 개발을 의뢰할 수 있다. 외부에서 개발한 쥐의 검진을 대행해 주기도 한다. 다양한 표현형의 쥐를 보존하는 ‘은행’ 역할도 한다. 쥐의 정자를 동결해 튜브에 넣고 질소탱크에 넣어 극저온에서 보관한다. 10월 기준으로 614건의 쥐가 이렇게 보존돼 있다.

성 단장은 “예전에는 개별 연구자들이 직접 유전자 변형 쥐를 확보하고 분석해 효율이 떨어졌다”며 “사업단에서 연구에 필요한 쥐를 확보하거나 공급하고, 유전자 기능을 정밀 분석해 연구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유전자 변형 쥐#인류 희귀병#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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