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차 없는 ‘쓰레기 벤처’? 지난해 40억 매출 ‘대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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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압축 쓰레기통 및 도심 쓰레기 처리 솔루션 업체 이큐브랩 대표 권순범.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 및 도심 쓰레기 처리 솔루션 업체 이큐브랩 대표 권순범.
“정말 ‘쓰레기 벤처’라고 불러도 괜찮겠어요?”

“그 말이 저희가 하는 일을 가장 잘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뭐, 틀린 말도 아니고요.”

30일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 ‘이큐브랩’ 사무실에 들어서자 영어, 중국어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터키어 등으로 제작돼 진열된 회사 소개 팜플렛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 수거 관리 플랫폼을 만드는 이 회사의 매출 90% 이상은 해외 실적이다. 권순범 이큐브랩 대표(30)는 전날 호주 출장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세계 50여 개국 쓰레기 수거업체와 대학, 공원 등에 태양광을 이용한 압축 쓰레기통과 쓰레기 수거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권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이던 2011년 친구들과 창업에 나섰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넘치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 성격이 강했다. 집에서 쓰레기를 꾹꾹 눌러 담아 버리듯, 거리의 쓰레기통에도 압축 기능이 있으면 좀 더 많은 쓰레기를 담을 수 있겠다 싶었다. 권 대표는 친구들과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해 주기적으로 쓰레기를 눌러주는 쓰레기통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다 실제 환경미화원들의 반응을 알고 싶어 새벽 5시부터 거리에 나가 의견을 물어봤다. 이 과정에서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보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인 점이 불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쓰레기통이 차지 않아 굳이 수거할 필요가 없는 곳도 들러야 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서 ‘수거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니 사업 아이템이 보였다. 권 대표는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 제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쓰레기통에 센서와 통신기능을 장착했다. 남아 있는 쓰레기 양을 측정해 효율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시장이 없었다. 대부분 쓰레기 수거를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하는데,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 분류코드가 없어 조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권 대표는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주거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설 업체들이 쓰레기 수거를 맡는다는 사실을 알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실제 세계 쓰레기 수거 시장규모는 연 600조 원이나 되고,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프랑스의 베올리아는 연 매출만 40조 원 수준이다. 권 대표는 KOTRA의 도움을 받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폐기물 처리 분야 박람회 참가를 시작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대성공. 주로 인건비는 비싼데 지리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해야할 범위가 넓은 나라들이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에 큰 관심을 보였다. 쓰레기 처리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러 업체들로부터 시범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며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무조건 하루에 3번 씩, 일주일에 21번 씩 쓰레기통을 비웠지만, 쓰레기를 압축하고 꽉 찼을 때만 수거하도록 하자 수거 횟수가 1주일에 3번까지로 줄었다. 올해 3월에는 약 150억 원 규모의 미국 볼티모어시의 스마트시티 입찰에서 현지 업체를 따돌리고 사업권을 따냈다.

지난해 약 40억 원의 매출을 올린 이큐브랩은 올해 9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한 달에 평균 400여 건의 사업문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미국과 독일, 중국에 지사를 뒀고 직원은 약 50명으로 늘었다. 권 대표는 “쓰레기 수거를 원하는 수요자와 쓰레기 수거 업체를 입찰을 통해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구출할 것”이라며 “쓰레기차 한 대 없이 전 세계 쓰레기를 수거하는 업체가 되겠다”고 말했다.

김성규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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