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극인]고베 지진, 포항 지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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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부장
배극인 산업부장
지진 대응 바이블처럼 인용되는 일본도 원래부터 잘했던 건 아니다. 1995년 1월 17일 화요일 오전 5시 46분. 규모 7.3의 강력한 지진이 고베시를 강타했다.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으로 불린 이 지진은 세계 6대 항구였던 고베항을 초토화했다. 6434명이 목숨을 잃고 4만3792명이 다쳤다.

당시 일본 정부 대응은 엉망이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지진 발생을 처음 확인한 것은 오전 6시경 우연히 튼 NHK 뉴스를 통해서였다. 지진 발생 보고에 약 한 시간이 걸렸고 제대로 된 정보도 아니었다. 자위대가 구호 활동에 투입된 것은 지진 발생 사흘째였다. 훗날 무라야마 총리가 “조금만 대처가 빨랐으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할 정도였다.

한국 같으면 여럿이 책임지고 구속될 상황이었다. 일본 대응은 달랐다. 지지율이 떨어진 무라야마 총리가 이듬해 자진 사퇴하긴 했지만 책임자 처벌보다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에 주력했다. 그것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 끈기 있고 집요하게 매달렸다.

먼저 정부 위기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정비했다. 이어 1997년부터 3년간 민간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지진 교훈활용조사위원회를 가동해 초동 대응부터 시간 경과에 따라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을 검증했다. 위원회가 내놓은 자료집을 내각부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현장에 체화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2010년 4월 13일 오전 5시 33분, 같은 지역 비슷한 시간에 규모 6.3 강진이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한 명도 사망자가 없었다. 이듬해 3월 11일 발생한 규모 9.0 동일본 대지진 때도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지진해일(쓰나미)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최악의 사태를 초래했는데, 이번에도 일본은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에 골몰했다. 정부 의회 민간단체가 각각 위원회를 구성해 1년 이상 조사한 결과를 보고서로 발표했고 지금도 재발 방지 대책을 추진 중이다.

책임을 묻지 않는 일본식 문화가 원인 규명을 흐린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책임자만 처벌하면 그만이라는 식은 더 곤란하다. 18일 마지막 영결식을 치른 세월호 참사가 3년밖에 안 지났는데 ‘안전 불감증’ 보도가 이어지고 있어서 하는 얘기다. 여객선 구조를 무단 변경한 선주가 경찰에 적발됐다. 여객선 승선 때 승객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차량 받침목을 빼버린다는 보도도 있다.

다행히 포항 지진 초기 대응에서 정부는 지난해 경주 지진의 교훈을 적절히 활용했다. 지진 관측 23초 만에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고 13분 만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됐다. 문제는 사후 대응이다. 피해 조사와 복구, 이재민 대책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응급 복구율이 90%에 육박했다는 생뚱맞은 발표를 내놓았다. 지진 피해 경험이 없어 벌어진 혼란으로 보고 싶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의 대응이다.

내진 설계도 없이 지진에 무방비로 노출된 도시에서 치명적인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은 어쩌면 천운이다. 이제는 한반도 지진 가능성을 상수로 놓고 빈틈없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 정부조사위원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1년 반 만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고 강조했다. ‘설마’가 재난을 자초했다는 말이다.

마침 일본 경험이 풍부한 이낙연 총리가 지진 대책 등 민생 컨트롤타워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제도와 시스템, 매뉴얼을 집요하고 끈기 있게 구축하고 체화하는 선례를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
#고베시 지진#이낙연 총리 지지대책 마련#이낙연 총리 민생 컨트롤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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