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봉 참빛그룹 회장 “건강 되찾아준 골프…이젠 내 인생 최고의 사업이 됐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9월 5일 05시 45분


참빛그룹 이대봉 회장은 일에 치여 챙기지 못했던 건강을 위해 골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렇게 접한 골프는 이제 인생일대의 사업이 됐다. 국내와 베트남에 각각 하나씩 골프장을 소유한 이 회장은 지금도 직접 코스를 돌며 명품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제공 ㅣ 참빛그룹
참빛그룹 이대봉 회장은 일에 치여 챙기지 못했던 건강을 위해 골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렇게 접한 골프는 이제 인생일대의 사업이 됐다. 국내와 베트남에 각각 하나씩 골프장을 소유한 이 회장은 지금도 직접 코스를 돌며 명품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제공 ㅣ 참빛그룹
■ 베트남까지 찾아간 특별한 골프사랑

업무 몰두하다 몸무게 불어 운동 삼아 골프
베트남 휘닉스리조트·포천 참밸리CC 운영
직접 잔디 돌며 점검…명품 골프장 꿈꾸죠

고등학생 아들 잃은 슬픔…장학사업 인연
많은 사람들이 ‘참빛’ 누리길 바라는 마음
90세까지 일해야…골프 더 열심히 칠 것


참빛그룹 이대봉(76) 회장은 2개의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54홀 규모의 베트남 휘닉스 골프리조트와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18홀 퍼블릭 참밸리CC다. 그의 골프 사랑은 엄청나다.

베트남에 갈 때마다 항상 시간을 쪼개 6개의 코스를 직접 돌며 잔디 상태와 코스를 점검한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확고한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이 회장의 고집스러움이 골프장 코스를 명품으로 만들어가는 비결이다.

이 회장과 골프의 인연은 건강에서 시작됐다.

“사업에 몰두하다보니 몸무게가 90kg이 훌쩍 넘어갔을 때가 있었습니다. 안 되겠다싶어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없을 땐 새벽에 나가 골프를 치고 출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재미를 붙여서 최상호 프로와 대회에 참가해서 상금을 탄 적도 있었습니다. 한 때 개인사정으로 골프를 잠시 놓은 적도 있지만 그 인연으로 이제는 골프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회장이 처음 골프장을 조성한 곳은 중국 연길시 부근 해란강 하류를 따라 만들어진 해란강 골프리조트였다. 백두산과 연계된 호텔과 관광사업을 했던 이 회장은 당시 조선족 자치주 서기장의 제의를 받고 골프장 건설을 결정했다.

이 회장은 “부지를 제공받기로 해서 가보니 그 쪽에서 후보지로 정한 6곳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돌아봤는데 해란강 하류 지형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이 주로 활동했던 무대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 골프장을 건설해서 운영했습니다. 다만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겨울이 길어 영업일수가 적은 것이 단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운영이 쉽지 않았고 적자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인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라 계속 운영해오다가 어쩔 수 없이 매각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아쉬웠지만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이후 시선을 돌린 곳이 따뜻한 베트남이었다. 베트남 휘닉스 골프리조트를 조성했다. 모두 쉽지 않은 공사라고 했지만 이 회장은 직접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이뤄냈다. 작업복을 입고 직접 공사를 진두지휘하는 이 회장의 모습을 본 베트남 총리가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하노이 시장상을 수상한 이대봉 회장(왼쪽). 사진제공|참빛그룹
하노이 시장상을 수상한 이대봉 회장(왼쪽). 사진제공|참빛그룹

베트남 휘닉스 골프리조트는 하노이 공항에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이 회장은 “해란강 골프장을 운영해보니 겨울에도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해외의 수많은 골프장들을 직접 돌아봤습니다. 그러다가 베트남과 인연이 닿았고, 골프장과 호텔 등을 건설하게 됐는데 경관이 너무 좋은 곳이어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골프장 이외에도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 레저, 에너지, 건설, 물류사업에 이어 2010년에는 서울 예술고등학교와 예원학교를 인수해 장학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다양한 사업을 통해 얻는 수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베트남과 중국 연변 등 국외에서도 장학사업을 펼쳐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연간 7000명 정도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예고와 예원학교에 재능이 있는 예비 예술가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렇게 하는 데에는 사연도 있습니다. 막내아들이 서울예고에서 성악을 전공했는데 고교 재학 중 선배들의 구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을 잃었지만 그 때 우리 아이를 괴롭혔던 아이들도 다 선처를 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의 유업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학교도 인수했고, 장학사업도 펼치게 됐습니다. 그 아이들이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걸 보면서 저도 많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는 “우리 그룹의 이름이 ‘참빛’입니다. 참이라는 게 많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좋은 의미를 빛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게 우리 그룹의 정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장학사업은 계속해서 펼쳐나갈 생각으로 시작 했습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 회장이 이처럼 레저 비즈니스와 교육사업 등 여러 부분에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함과 무리하지 않는 투자에 있었다. 이 회장은 절대로 빚을 내서 새로운 사업을 펼치지 않는다. 무리한 경영을 펼치면 안 된다는 걸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성공한 사업가가 그랬듯 그 또한 사업실패의 뼈저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저도 사업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때 교훈이 빚을 내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싼 수업료였지만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때는 충분한 자금이 모이기 전까지는 무리해서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진행하는 모든 일이 무리 없이 잘 이어지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미 고희(古稀)를 훌쩍 넘어 팔순이 멀지 않은 나이에도 이 회장은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어린시절 가난 탓에 고등학교 2학년만 마치고 학교를 떠나 여러 일들을 하며 힘들게 살아왔던 터라 일이 없어서 힘들었던 시절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앞으로 할 일이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힘이 납니다. ‘두드려라. 그럼 열린 것이다”라는 말을 지금도 좌우명처럼 생각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라며 웃었다.

그의 소원은 90세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봉사를 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서 지금도 골프를 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사업을 위해 조만간 베트남으로 떠날 계획이라는 이 회장. 그의 얼굴에는 새로운 도전을 앞둔 설렘이 가득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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