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방화복, 가방 만들어 소방관 돕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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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REO’팀 학생 6명… 재활용 가방-팔찌 팔고 기부 받아
열흘도 안돼 1800만원 이상 모아… 소방관 공상 인정 소송비 지원

1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학생회관에서 ‘REO’팀이 폐방화복으로 만든 가방과 팔찌를 소개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학생회관에서 ‘REO’팀이 폐방화복으로 만든 가방과 팔찌를 소개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최근 한 인터넷을 통해 선보인 ‘REO’라는 브랜드의 가방과 팔찌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REO는 서로를 돕자(Rescue Each Other)는 뜻이다. REO는 건국대 사회적기업 동아리 ‘인액터스(Enactus)’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6명이 만든 팀의 이름이기도 하다.

REO 제품의 재료는 소방관이 입었던 폐(廢)방화복이다. 방화복은 불과 물에 강한 특수섬유 ‘메타 아라미드’로 만든다. 방화복은 3년간 입으면 소방관 안전을 이유로 버려졌지만, 평상시 패션 원단으로는 손색없다. 화재 현장을 누비며 스며든 유독물질을 처음 씻어내는 게 까다롭지만 내구성은 강하다. REO팀이 제품을 개발한 이유는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받는 소방관을 돕기 위해서다.

화재 등 위험한 재난현장에서 일하는 소방관은 특성상 유독물질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암을 비롯해 다양한 중증 질환에 시달린다. 그러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게 쉽지 않아 공상(公傷) 인정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암질환 발병을 이유로 소방관 25명이 공상을 신청했지만 1명만 받아들여졌다.

이승우 씨(24·4학년)는 “평소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시민의 한 명으로 너무 미안했다”며 “동료들과 함께 도울 방법을 찾다가 폐방화복을 재활용한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씨 등은 지난해 7월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과 함께 디자인과 제품 제작에 뛰어들었다.

건축학 경영학 철학 등 팀원 각각의 전공은 다르지만, 패션과 디자인 전문가를 수소문해 조언을 구하며 결과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소방관이 입던 옷으로 만든 제품’임을 알리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 팀원들은 강의실이 아닌 현장에서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만나며 ‘예비 사회인’으로서의 자신감도 얻었다. 박세환 씨(24·3학년)는 “REO는 요즘 유행하는 ‘친환경 패션’과도 궤를 같이해 스스로도 많이 뿌듯한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달 포털사이트를 통해 ‘소방관과 우리 서로가 서로를 구하다’라는 펀딩을 시작했다. 정식 판매에 앞서 기부와 구매를 결합한 크라우드 펀딩에 나선 것이다.

가방(6만 원), 팔찌(1만7000원)를 구매하고 추가로 기부까지 가능하다. 한 달간 200만 원이 목표였는데 열흘도 안 돼 640여 명이 참여해 1800만 원이 넘었다.

세척 등 제품 제작비를 제외한 수익과 순수 기부금은 전액 소방관의 공상 인정을 위한 소송비용에 지원된다. 향후 판매량이 늘어나 제품 생산단가가 낮아지면 판매액 중 기부금 비율이 늘어난다는 게 REO의 설명이다. REO 초기부터 활동하다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하는 4학년 이수연 씨(23·여)는 “예상치 못한 호응에 뿌듯하지만 책임감도 느낀다”며 “이런 노력이 소방관 권익 증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건국대 reo팀#방화복#메타 아라미드#rescue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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