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代作 논쟁’… 사기인가 관행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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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작업실에 앉아 포즈를 취한 조영남 씨. 그는 군 복무 시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973년 서울 종로구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 동아일보DB
2009년 5월 작업실에 앉아 포즈를 취한 조영남 씨. 그는 군 복무 시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973년 서울 종로구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 동아일보DB
사기일까, 관행일까.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 씨(71) 그림 300여 점을 8년간 헐값에 대신 그렸다”는 화가 송모 씨(60)의 폭로에 조 씨가 “작업 관행일 뿐”이라고 해명한 데 대해 미술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송 씨의 제보를 받은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조 씨의 서울 사무실을 16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조 씨가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자신의 그림처럼 유통시킨 것으로 보고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에 따르면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송 씨는 뉴욕에서 조 씨와 우연히 인연을 맺어 2008년 귀국 후 생활비 마련을 위해 조 씨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송 씨는 “통상적인 작업 보조 수준이 아니라 수수료를 받고 90% 이상 완성된 그림을 제공하면 조 씨가 여기에 약간의 덧칠과 서명을 더해 자기 작품으로 공개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씨의 친구로 수차례 설치예술 작업을 함께 했다는 시인 오모 씨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 씨가 송 씨를 공동작업자나 조수가 아니라 아랫사람 부리듯 대했다. 오랫동안 겪은 인간적 모멸감이 폭발해 벌어진 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씨의 소속사 미보고엔터테인먼트 장호찬 대표는 “조 씨가 탈진해 직접 대화가 어렵다. 올해 초 전시 일정이 임박했을 때 빠듯한 방송 스케줄에 쫓기며 급하게 준비하다가 송 씨에게 대작(代作)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의 개념 구상은 조 씨의 창작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19일부터 서울 용산구 UHM갤러리에서 열 예정이던 조 씨의 개인전은 취소하기로 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은 물론 도의적 책임도 달게 지겠다”고 답했다. 조 씨는 진행을 맡고 있던 MBC 표준FM ‘지금은 라디오시대’ 출연을 17일 중단했다.

조 씨와 가까운 대중음악계 관계자들은 조 씨의 혐의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연기획사 대표 박모 씨는 “조 씨가 작업실에서 중심이 되는 소재를 그리면 조수가 여백을 칠해 메우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송 씨가 얘기하는 ‘대량 주문생산’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3월 서울 종로구 팔레 드 서울 갤러리에서 열린 조영남 개인전에 전시됐던 2014년 작 아크릴화 ‘극동에서 온 꽃’(위 사진)과 
2013년 10월 경남 창원시 송원갤러리의 개관 1주년 기념 초대전에 걸렸던 ‘화투그림’. 동아일보DB
3월 서울 종로구 팔레 드 서울 갤러리에서 열린 조영남 개인전에 전시됐던 2014년 작 아크릴화 ‘극동에서 온 꽃’(위 사진)과 2013년 10월 경남 창원시 송원갤러리의 개관 1주년 기념 초대전에 걸렸던 ‘화투그림’. 동아일보DB
한편 미술계 전문가들은 대작 논란이 최초로 불거진 시점에서 조 씨가 “원본을 내가 그리고 이를 샘플로 복제시켰다”고 해명한 데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송 씨의 도움을 얼마나 빌렸든 그간의 작업 방식을 뚜렷이 밝히지 않은 채 TV에 작업 장면을 노출시켜 마치 자기가 혼자서 온전히 그린 것처럼 여겨지게 한 것, 낮은 수수료를 주고 얻은 대작 그림을 시장에 유통시킨 점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작가와 도제(徒弟)의 공동 작업 방식은 미술계의 오랜 전통이다. 현대미술에서는 작가가 고안한 개념과 얼개를 실물 작품으로 구현할 보조자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조 씨의 경우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 일각에서 ‘작가가 개념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는 건 미술에 대한 모독이다. 이름값을 앞세워 그림을 미술시장에 유통시키는 소위 ‘아트테이너’의 행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관계없이 조 씨의 그림을 산 수집가들은 작품을 중개한 갤러리나 경매회사에 변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7월 서울옥션 자선 경매에 나온 조 씨의 그림 3점은 각각 180만, 210만, 260만 원에 낙찰됐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속초=이인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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