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새해 북한의 ‘빨치산식 도발’에 대응할 준비는 돼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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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을 떠올리면 늘 가슴이 아프다. 화끈하게 복수를 못해 몇 배로 아프다. 우리는 “강력한 응징”을 입버릇처럼 되뇌지만 북한의 교묘한 테러에도 이 다짐은 유효한 것일까. 동아일보DB
천안함을 떠올리면 늘 가슴이 아프다. 화끈하게 복수를 못해 몇 배로 아프다. 우리는 “강력한 응징”을 입버릇처럼 되뇌지만 북한의 교묘한 테러에도 이 다짐은 유효한 것일까. 동아일보DB
2013년 마지막 날이다. 본보를 포함한 많은 언론들이 올해 10대 뉴스 첫머리를 장성택 처형으로 선정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남북관계였다. 올 한 해 남북관계는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잠시 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은하’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북한은 약 두 달 만에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어 개성공단 법규 전면 무효화와 통행차단을 선언했다. 북한군은 ‘전면적 대결 태세 진입’을 선언한 뒤 남북한 군사적 긴장을 급속히 고조시켰다.

위의 사건들은 2009년 상반기에 일어난 것들이다. 그런데 올 초 우리가 겪은 사건과 전율이 일어날 만큼 똑같다. 2009년 하반기는 어떠했을까. ‘남북은 6∼7월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3차례 개최했다. 이어 8월 북한은 개성공단 관련 모든 제한을 풀었다. 북한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과 개성공단 활성화,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를 내밀었다.’

역시 올 하반기 상황과 똑같다. 하지만 올해 북한이 보여준 행태에서 4년 전 데자뷔(기시감)를 느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다.

2009년의 경우 하반기 초 일시적 평화공세에 이어 그해 10월부터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됐고 11월에는 ‘대청해전’이 벌어졌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북한은 10월부터 “최고 존엄을 무시한 자들을 끝까지 처단하겠다”고 연일 협박해왔고 얼마 전 청와대에 “예고 없는 타격”을 통보했다.

2009년이 2013년과 똑같다면 새해 2014년에 2010년에 벌어졌던 일들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2010년 한국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란 두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최근 “북한이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에 대남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4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로 교체됐다. 북한도 김정일 체제에서 김정은 체제로 바뀌었다. 실은 북한은 바뀐 게 거의 없다. 2008년 8월 뇌중풍으로 쓰러진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군부부터 맡겼다. 2009년 상반기에 보여주었던 북한의 강경정책은 군 통수권을 쥔 김정은의 초기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어떻든 북한의 대남 정책이 지금이나 4년 전이나 별 다름없이 되풀이된 반면 우리는 어땠을까. 2006년작 할리우드 영화 ‘데자뷰’에선 주인공 덴절 워싱턴이 과거로 돌아가 한 시점을 바꾸어 결말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우리도 과거로 돌아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되짚어보자. 그해 8월 화해 무드를 타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차 서울에 온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은 청와대를 방문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당신들 그렇게 놀면 ‘국물’도 없어”라는 투의 ‘훈시’를 들었다. 이어 그들이 인도적 대북지원을 요청했을 때 우리의 응답은 옥수수 1만 t에 불과했다.

당시 필자는 이 소식을 듣고 “큰일이 터지겠다”는 예감에 가슴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있다. 매년 쌀 40만 t에 플러스알파를 얻어가던 북한 입장에서 옥수수 1만 t은 조롱과 모욕으로까지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가 그렇게 나온 밑바닥에는 오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하반기 급격한 화해무드로 전환하자 이명박 정부는 “원칙적 대북정책의 승리”라고 환호했다.

‘원칙적 대북정책의 승리’라고? 그러고 보니 이 말도 올해 너무나 많이 들었던 말 아닌가.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 회담에 나오고 이산가족 상봉까지 동의하자 보수층에선 “박근혜 정부의 원칙적 대북정책이 승리했다”고 환호했다. 냉철하게 보면 올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로 요약된다. 4년 전처럼 말이다. 북한이 통행을 차단하고 식품 반입도 막으며 무조건 항복하라 요구하는 상황에선 어느 정부라도 굶어죽을 위기의 우리 근로자들을 철수시켰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는 가만히 있을 뿐이고, 통일부는 개점휴업 상태다. 북한만 4년 전에도, 올해도 저 홀로 북 치고 장구를 쳤을 뿐이다.

북한의 행태도, 우리의 자신감도 4년 전과 판박이이니 내년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군은 북한이 도발해오면 강력한 응징을 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북한의 특기는 전면 도발이 아니었다. 북한군의 뿌리는 몰래 치고 빠지고 숨는 것이 특기인 빨치산식 비정규전이다.

옥수수로 무시당해 이를 간 북한은 2009년 11월 황장엽 암살단을 파견했고, 천안함 공격 특공조도 그즈음 만들어 맹훈련시켰다는 정보도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 여름부터 준비한 것이었다. 김관진 장관의 내년 1∼3월 공격설이 그 나름의 정보에 기초한 것이라면 지금쯤 북한 어디선가 대남 공격조가 맹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4년 전 우리는 자만하다가 너무나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제부터 시작이어야 한다. 새해엔 2010년의 데자뷔를 보고 싶지 않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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