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하늘엔 통신감청 ‘에셜론’… 땅엔 온라인 감시 ‘프리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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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NSA 도청 파문]
국가안보국 NSA, 어떤 조직인가

“나는 감시한다. 고로 존재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러더(Big Brother)’는 가상국 오세아니아의 통치자다. 오웰이 이 소설을 발표한 1949년만 해도 빅브러더는 히틀러 등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체주의 독재자를 의미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올해 6월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이 믿음이 깨졌다. 미 국가안보국(NSA·National Security Agency)이 세계를 상대로 무차별 감시를 벌여왔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소설 속 빅브러더를 현실에 등장시킨 NSA는 어떤 조직일까.

○ ‘그런 기관 없어요(No Such Agency)’가 별명

메릴랜드 주 포트미드에 위치한 NSA는 1952년 해리 트루먼 당시 미 대통령이 만들었다. 트루먼 전 대통령은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 이유가 정보 수집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비밀리에 NSA를 설립했다. 특히 그는 NSA에 미국으로 송수신되는 모든 통신정보를 추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오늘날 NSA의 토대를 만들었다.

정보 수집 활동은 크게 첩보원 등 사람이 기반인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와 전자장비를 사용하는 ‘시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로 나뉜다. 시진트를 이용하는 대표 기관인 NSA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전화, e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도청할 수 있으며 레이더와 미사일 신호도 포착할 수 있다. 목표 건물의 유리창에 레이저를 쏴 건물 안 대화를 듣고, 특정인의 목소리를 저장했다 그가 전자기기를 이용하는 순간 감지해 낸다.

NSA는 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정찰국(NRO) 등 미국 16개 정보기관 중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군 조직이 아니지만 장성급 군인이 NSA 국장을 맡고 있는 이유다.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62)은 동독, 중동 등에서 정보장교로 명성을 떨친 사성장군(대장)이다. NSA 직원들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NSA의 별명도 ‘그런 기관 없어요(No Such Agency)’,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Never Say Anything)’ 등이다.

NSA의 연간 예산 및 직원 수도 기밀이다. 스노든의 폭로로 2013년 기준 인원 약 3만∼4만 명, 예산 108억 달러(약 11조4480억 원)라는 점이 알려졌을 뿐이다. 이는 약 2만1000명의 직원을 보유한 CIA보다 훨씬 많다.

○ 에셜론과 프리즘

NSA가 공상과학 영화를 능가하는 정보 수집 및 도청을 할 수 있는 이유는 120여 개의 첩보 위성을 사용한 통신감청망 ‘에셜론(Echelon)’ 덕분이다. 에셜론은 첩보 위성, 지상 기지, 고성능 신호인식 컴퓨터를 연결해 전화, 팩스, e메일, 문자메시지, 금융거래 등 지구상의 거의 모든 통신 내용을 매일 30억 건씩 감청하는 시스템이다.

인터넷의 출현, 9·11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대테러 전쟁 등은 NSA의 위상과 활동 범위에 날개를 달아줬다. 특히 에셜론의 IT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프리즘(Prism)’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2007년 탄생한 프리즘은 인터넷과 통신회사의 중앙 서버에 접속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그램이다. NSA는 프리즘을 이용해 구글, 페이스북, 야후 등 유명 IT 기업의 서버에 접근한 뒤 일반인 사용자의 e메일, 동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 내용, e메일 및 메신저 주소록 등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어떤 사람이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폭탄’ ‘테러’ ‘대통령’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그는 즉각 NSA의 추적 대상이 된다. NSA는 곧 그의 신상정보, 위치, 자주 연락하는 사람의 명단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암호나 방화벽 등을 뚫을 수 있는 시스템인 ‘엑스키스코어(XKeyscore)’까지 쓰면 특정인의 인터넷 이용 기록을 열람하고 프리즘으로 수집한 내용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 수도 있다. NSA에 포착되면 한 인간의 숨소리까지 낱낱이 분석당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러 예방이 중요하다 해도 NSA가 시민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 지나친 비대화가 내부 폭로 발판 제공


베일 속 NSA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NSA가 너무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9·11 이후 테러 정보 수집의 양이 급증하자 미 정보기관들은 수학자, 언어학자, 엔지니어, 컨설턴트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인을 대거 채용했다. 스노든도 컨설팅회사 부즈앨런해밀턴의 파견 직원 신분으로 NSA의 컴퓨터 시스템을 관리했다. 안보 교육을 받지 않은 민간인이 일급 국가기밀을 쉽게 접하다 보니 스노든의 폭로는 일종의 ‘예견된 사고’였던 셈이다.

NSA가 다루는 정보가 워낙 광범위해 이 모든 작업을 내부 직원에게 맡기는 일도 불가능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미국의 비밀취급권자 491만 명 중 21.6%에 달하는 106만 명이 민간업체 소속이다.

NSA는 스노든의 폭로 초기 ‘테러 방지를 위해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고 우방국 정상을 상대로 도청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비판이 커지자 2005년부터 8년간 NSA를 이끌었던 알렉산더 국장은 지난달 16일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 이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NSA의 존립 정도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겨냥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후 ‘도청’은 미국 대통령에게 최대 금기어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도청 스캔들에 얽힌 닉슨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미국#NSA#도청#에셜론#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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