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꽃과의 대화]꽃나무 개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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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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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산수유→분홍 진달래→붉은 장미… 色의 릴레이

누구에게나 봄은 꽃과 함께 시작된다. 꽃이 없는 봄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지방의 꽃나무에서는 지난해에 만든 꽃눈이 겨울잠을 잔 후 봄에 깨어나서 꽃을 피운다. 꽃나무의 꽃피는 시기는 보통 2∼3월 한낮 온도의 합계(적산온도·積算溫度)에 따라 매년 조금씩 달라진다. 또 같은 지역이라도 미기후(微氣候·주변 환경과 다른 국소지역의 특별한 기후)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건물 주변에 심은 나무가 좀 더 일찍 꽃을 피우는 경향이 있고, 건물 방향과 관련해서는 남서동북향 순으로 꽃이 핀다.

자, 이제 싱그럽고 예쁜 봄꽃들이 언제 피는지를 살펴보며 다가오는 봄을 미리 맞이해 보자. 다음의 개화기는 대전 이북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했다. 남부지방의 꽃 피는 시기는 이보다 며칠은 더 빠를 것이다.

▶3월=꽃나무 중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것은 산수유다. 자그마한 노란 꽃이 무리지어 안개처럼 아스라이 피는 산수유 꽃은 3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 주변 산에 흔히 야생하는 생강나무 꽃도 비슷한 시기에 핀다. 생강나무 꽃도 노란색이지만 산수유 꽃보다 조금 더 뭉쳐서 핀다.

건물 남쪽에 많이 심는 백목련은 3월 말이면 탐스럽고 향기로운 흰 꽃을 피워 올린다. 늦서리나 이른 한낮 고온으로 금방 져버리는 경우가 많아 아쉽지만, 어차피 봄은 짧아서 매력적이지 않은가.

▶4월=4월의 시작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알려준다. 보통 양지에 많이 피는 개나리와 달리 진달래는 북향 지역에 많이 자생한다. 음지에 있는 진달래꽃은 양지의 그것보다 약간 늦게 피지만 새색시 볼 같은 분홍빛 꽃색이 훨씬 선명하다.

산수유, 진달래, 아까시(위부터)
산수유, 진달래, 아까시(위부터)
봄꽃의 대명사로 통하는 왕벚나무 꽃은 살구나무, 매화나무 등 장미과의 다른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피어 4월 중순을 찬란하게 장식한다.

4월 말이 되면 산철쭉이 명자나무와 함께 피어 ‘신록의 봄’을 알려준다. 최근에는 수수한 산철쭉 대신 다채로운 색을 가진 왜진달래를 많이 심는다. 일본 원산으로 개량이 많이 된 왜진달래 꽃은 산철쭉에 비해 화려하긴 하지만, 산철쭉처럼 우리네 봄 풍경과 어울리는 맛은 적어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4월 하순 이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꽃을 먼저 피우고 나중에 잎을 내밀지만, 그 이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잎과 꽃을 함께 내놓는다. 요즘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식물의 생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서리 때문이다.

▶5월=
라일락은 싱그러운 봄바람에 하트 모양의 큼지막한 잎을 한들거리며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이 꽃나무는 토종 수수꽃다리의 친척이다. 예전에는 향기로운 라일락꽃을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전에 심은 나무들 중에 가지치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고목이 많아 꽃이 잘 피지 않을뿐더러 더위를 싫어하는 이 나무의 특성 때문에 꽃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듯싶다.

‘느림뱅이’ 콩과식물(이들의 꽃과 잎은 정말 늦게 나온다)인 등나무와 아까시나무는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잎이 나고 꽃이 피기 시작한다. 흔히 ‘아카시아’라 불리는 아까시나무는 한때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천대를 받았다. 하지만 훌륭한 밀원자원이며, 중장년 독자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꽃을 따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나름 귀중한 꽃나무라고 생각한다.

아차! 여기서 한 가지. 아까시나무 이후부터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꽃눈을 작년에 만들어 놓는 부지런함을 떨지 않는다. 따라서 이 꽃나무들은 봄철에 가지치기를 해도 상관이 없다.

3월에 시작한 우리나라 봄의 대미는 5월 하순의 장미가 장식한다. 저 푸른 초원 위 하얀 집의 흰색 나무담장 사이로 빨간 덩굴장미가 활짝 핀 모습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많은 아파트 담장 위에 빨간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다. 그렇지만 외국에선 흔한 아름다운 진짜 정원용 장미는 쉽게 볼 수가 없어 아쉽다. 꽃꽂이용 장미를 기르다가 노화된 포기를 정원에 심어버리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말이 길어졌다. 꽃을 전공하는 필자에게 봄은 수다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떤 꽃나무가 우리나라 봄과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살구나무라고 할 것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라는 흘러간 가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네 봄엔 연분홍색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살구는 해걸이도 없이 매년 풍성한 열매를 맺지 않는가!

올해 봄도 산수유로 시작해 장미로 끝나며 어김없이 아쉬움을 남기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봄은 꽃들과 함께 다시 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네 온대지방의 삶은 희망적이다.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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