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아들 광범씨, 격투기 링닥터 활약

  • 입력 2009년 6월 11일 16시 03분


‘전설의 파이터’ 최배달의 아들 광범씨. 동아일보
‘전설의 파이터’ 최배달의 아들 광범씨. 동아일보
최광범씨. 동아일보사진
최광범씨. 동아일보사진
최배달. 동아일보 자료사진
최배달. 동아일보 자료사진
"아악!"

7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신생 종합격투기 대회 '무신(武神)'에 출전한 한 선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상대 선수의 머리에 부딪힌 이마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선수가 눈도 뜨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하자 파란 가운을 입은 링닥터가 나타났다. 그는 잠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선수를 지켜보더니 이내 능숙한 솜씨로 상처를 꿰맸다. 링에 복귀한 선수를 주의 깊게 지켜보던 링닥터는 별 탈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선수들을 돌본 '파란 가운'의 주인공은 최광범 씨(35).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본명 최영의, 1922~94)의 맏아들이다. 광범 씨를 9일 오전 그가 일하는 경기 의정부 신곡2동 백병원 인근에서 만났다.

●선수들 눈빛 보며 뭉클해져

광범 씨는 '무패 파이터'의 아들답게 첫 인상부터 남달랐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웬만한 남자 허벅지만한 팔뚝, 다부진 체격은 격투기 선수 못지않았다. 그는 "가운을 입지 않으면 경기장에서 선수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웃었다. 광범 씨는 병원에서 정형외과 과장으로 일한다.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다고 학창시절 때부터 다양한 무술을 섭렵했다. 합기도, 킥복싱, 태껸 등을 배웠고, 시합에도 나갔다. 격투기 선수로 계속 활동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 얘기가 나왔다. "아버지가 무술에 '올인'하는 걸 원치 않으셨어요. 누구보다 무술에 애정이 많은 분이셨지만 그만큼 또 고통이 따르는 걸 잘 아셨기 때문이죠." 실제 광범 씨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50세 즈음부터 무릎, 손, 다리 등 안 아픈 곳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충고 때문일까. 최배달의 세 아들은 모두 무술을 즐기지만 업으로 삼고 있진 않다. 차남인 광수(33) 씨는 대한씨름협회에서 일하고, 막내 광화(27) 씨는 필리핀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밟고 있다.

격투기 링닥터의 일당은 10~20만 원 남짓. 휴일 내내 고생하는 댓가치곤 크지 않은 금액이다. 광범 씨는 "링 근처에만 가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돈을 주고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 보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링에 올라가기 직전 선수들 눈빛이 좋다"고 강조했다. 선수들 눈빛에 담긴 비장함을 볼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려운 무인들 돕기 위해 장학회 세우고 싶어

'남편 또는 아버지'로서 최배달의 모습은 어땠을까. 광범 씨는 아버지를 '매우 자상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크게 싸운 적이 없었어요. 자식들에게도 항상 따듯한 분이셨죠." 그러나 광범 씨는 자식들이 나태해질 때만큼은 따끔하게 지적했던 아버지라고 전했다. "넘친 물을 먹되, 안에 있는 물을 들이키진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물이 넘치려면 항상 꾸준히 채우라는 뜻이죠."

광범 씨는 꿈이 하나 있다. 무술을 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돼 못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장학회를 세우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무패'의 무인도 있지만 수많은 3류 무인들도 있잖아요. 저는 그저 무술이 좋다는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할 수 있도록 평생 돕고 싶습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b>△최배달은 누구

본명은 최영의. 192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24세의 나이에 전일본 가라테 선수권대회를 재패했다. 그 뒤 일본의 가라테 10대 문파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무술인들과 겨뤄 한번도 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00번 넘게 황소와 대결해 40마리가 넘는 황소의 뿔을 꺾은 것으로도 유명한 전설의 파이터.

실전 가라테로 알려진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로 국제가라테연맹 총재도 역임했다. 그의 일대기는 만화와 영화 등으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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