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오후 10시 이후 학원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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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4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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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오후 10시 이후 학원 영업 금지 등 사교육비 절감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24일 밝혔습니다. 학부모 단체는 학생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환영합니다.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학원가는 교육의 한 축인 사교육을 적으로 보는 발상이라고 비판합니다. 학습 선택권 및 학원 영업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임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 의견에 더 공감하십니까.》

학생의 건강-행복 추구권 보장

오후 10시 이후 학원 교습시간을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겠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음성화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하지만 이미 시도조례로 제정돼 있는 규정의 실효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조치라 생각한다. 심야 학원 교습 금지는 중산층을 살리는 ‘휴먼뉴딜’ 정책의 하나로, 또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제기됐지만 그 이전에 학생의 건강과 행복 추구라는 기본권 차원에서 반드시 보장해야 할 조치다. 성인에게는 장시간 노동을 법적으로 금지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가 이토록 장시간 학습노동을 강요하는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학원의 심야교습만 금지할 게 아니라 학교에서 밤 11시, 12시까지 계속하는 강제자율학습도 함께 금지해야 마땅하다.
심야 학원 교습 금지를 시행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방과후 학교 활성화를 드는데 그렇다면 최근 관심을 끄는 ‘사교육 없는 학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교육 없는 학교’는 정확히는 ‘사교육비를 일부 절약하는 학교’라고 해야 맞다. 학교 밖에서 하는 사교육을 학교 안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시켜주는 방안에 불과하다. 학부모의 사교육비는 일부 줄어들지 모르지만 학생으로서는 사교육 시간이 절대 줄어든 게 아니다. 장소만 바뀔 뿐이다. 공교육을 정상화하므로 사교육의 근본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하는데 공교육 정상화는 정규 교육과정의 내실화 및 정상화이지 방과후 학교 활성화가 아니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외국어고를 포함해 입시제도까지 손댈 계획이라 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다음 달 중순 종합적인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낸다 하는데 교과부가 사교육비 대책을 낸 지는 불과 두 달 전이다. 사교육비만 일부 줄이는 게 아니라 사교육의 수요 자체를 장기적으로 줄여 나가려면 사교육을 유발하는 정책의 과감한 정비가 필요하다. 현 정부 들어 사교육은 더 기승을 부린다는 게 학부모의 체감이고, 학원가의 정설이다. 일제고사 실시, 자율형사립고 도입, 국제중 설립, 영어교육 강화 등 한두 요인이 아니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책은 정책대로 가고, 한쪽에서는 학원 시간을 제한하는 균형 잡히지 못한 정책을 펼치면 사교육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어떤 제도와 정책이 사교육을 유발하는지, 사교육 시장으로 쫓아가게 하는지 학부모와 학생에게 물어보면 단박에 아는 내용도 정책을 만드는 담당자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우기면서 사교육 절감 정책이라고 내놓는다. 학원 심야교습 금지는 사교육시장과 한판 전쟁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고 학생의 건강과 행복 추구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면에서 봐야 한다. 사교육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정책을 함께 마련해야 음성적 교습이나 과외 같은 부작용 없이 성공시킬 수 있다.
윤지희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공동대표

학습 선택권 빼앗아 위헌 소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사교육 관련 인터뷰 기사를 보며 내가 사는 대한민국은 정말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국가인지 답답한 심정이었다. 미성년인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판매하면 처벌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현실성 없는 시간 규정을 정하고 밤늦게 공부를 가르치면 처벌하겠다니. 그것도 반강제적인 학교의 보충 자율학습과 달리 교육 수요자(학생과 학부모)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학습을 대상으로 말이다.
이는 상당한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 대부분 지방 고등학교의 1학년과 2학년 학생은 오후 10시, 3학년은 오후 11시까지 보충 자율학습을 명분으로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한다. 학생의 의사에 반해 학교에서 오후 10시 넘게 반강제적 자율학습을 시키는 일은 합법이고, 같은 시간에 학생의 선택에 의해 학원에서 강의를 듣는 일은 처벌 대상이 된다. 정말 이상한 논리가 아닌가? 이는 분명 학생의 기본권인 학습 선택권 침해이고, 관련 법령에 의해 등록하고 운영하는 학원의 영업권과 직업 선택권의 침해이다. 방과후 학교의 확대를 통한 학교의 학원화는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서 보장한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의 원칙을 위반하는 방안이다.
곽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도 밀어붙였는데 왜 못하는가”라고 했는데 5공의 과외금지 조치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과외의 음성화였고 음성화로 인한 비용의 고액화였다. 방과후 학교를 확대하여 특정 단체나 업체에 위탁을 허용하거나 유명학원 강사를 학교로 불러들이겠다는 정책 또한 공교육의 근본을 초토화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같은 학교에서 정규 교사가 정규 교과 진도를 가르치고 나면 그 교사가 가르친 내용의 학습력 향상을 목적으로 과외교사를 투입해서 정규 교사가 가르친 내용을 새롭게 가르친다? 학생은 과연 누구를 선생님으로 존경해야 하나. 이로 인한 현직 교원의 위상 추락과 사기 저하는 불을 보듯 명확한 사실이 아닐까.
학생 수가 많은 도시 학교는 위탁운영을 희망하는 곳이 줄을 잇겠지만 학생 수가 적은 지방 학교는 운영 희망자가 없거나 질이 저하되어 교육 양극화를 없애기는커녕 결과적으로 지역 간, 계층 간의 교육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다. 특정 지역의 특정 학원을 기준으로 하는 정책이 아니라 대도시와 지방의 현격한 차이를 간과하지 않는 숲을 보는 정책을 추진해주기 바란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철저히 벌이겠다” “전사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곽 위원장의 소신은 교육의 한 축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교육을 격멸해야 할 적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도이다. 사교육을 안 받아도 되는 정책이 아니라 못 받게 하는 정책은 공교육에 대한 사형선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권영식 한국학원총연합회 시도지회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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