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는 나약한 겁쟁이』…옛친구 인터뷰서 밝혀

  • 입력 1998년 7월 7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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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과연 ‘사내다움의 화신’이었나, 아니면 연약하기 짝이 없는 겁쟁이였나.

작가 군인 종군기자 등으로 역사의 현장을 지켰고 평생 여인 술 수렵 바다낚시를 즐겨 ‘남성상의 대명사’로 불리는 헤밍웨이의 속내에는 연약함 외로움 두려움 등이 가득차 있었다는 주장이 나와 이채다.

그의 친구였으며 그에 관한 몇권의 책을 썼던 호세 루이스 카스티요 푸체는 헤밍웨이 탄생 1백주년을 1년 앞두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최근 열린 ‘헤밍웨이 특별전’을 맞아 헤밍웨이의 숨겨진 내면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1954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헤밍웨이는 소설같은 삶을 살다 갔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항상 외로움과 애처로움이 있었다.

헤밍웨이는 누구보다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했으며 연약한 측면이 많았다. 도전과 모험에 남달리 집착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려는 일종의 가면이었다.

헤밍웨이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릴 적 누이들의 옷을 입혀 여자어린이처럼 키웠다.

성장과정에서 그는 산부인과 의사였다가 자살한 아버지를 비겁자로 간주하고 스스로를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와 동일시 하려고 애썼다.

카스티요 푸체는 헤밍웨이가 수염을 무성하게 기른 것이나 스스로 ‘제2의 조국’이라 여겼던 스페인에서 투우와 투우사에 몰입했던 것도 선천적인 연약한 성격을 이기려는 노력이었다고 설명했다.

평생 불을 환히 밝히지 않고서는 잠들지 못할 만큼 두려움이 많았다는 것.

헤밍웨이는 1918년 이탈리아 전선 구급차운전병을 자원하고 1919∼22년의 그리스 터키전쟁에 종군기자로 뛰어들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고 아프리카에서 사자와 코끼리를 사냥하기도 했으며 권투나 심해(深海)고기잡이 같은 남성적 운동에 몰입했다.

헤밍웨이는 작품 속의 모험들을 실제로 시도함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위험한 일을 일부러 찾아다니는가 하면 치명적인 사고로 죽기를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62세때 미 아이다호주 농장에서 사냥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는 만년에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알코올보다는 외로움에 더 취한 듯했다”고 친구는 전했다.

〈윤희상기자·마드리드DPA연합〉he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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