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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씨 “차별 모르는 노르웨이서 참변… 더욱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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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씨 “차별 모르는 노르웨이서 참변… 더욱 충격”

동아일보입력 2011-07-27 03:00수정 2011-07-27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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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출간 행사차 방한
“‘문도 안 잠그고 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착하고 정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이번 일로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26일 오전 ‘노르웨이 라면왕’이라 불리는 한국계 노르웨이 사업가 이철호 씨(74·사진)는 노르웨이로 출국하기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6·25전쟁 직후 17세 때인 1954년 노르웨이로 건너간 뒤 구두닦이 요리사 등을 거친 끝에 한국식 라면 브랜드 ‘미스터 리’를 창업해 현지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인물. 2004년 이민자 최초로 노르웨이 국왕에게 ‘자랑스러운 노르웨이인 상’을 받았고 노르웨이 초등학교와 고교 교과서에 그의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다. 이 씨는 22일 노르웨이 오슬로 우퇴위아 섬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21일 자신의 자서전 출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 씨의 딸이 쓴 이 책(‘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은 이 씨의 인생과 성공담을 담았다.

이 씨는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노르웨이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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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동안 노르웨이에 살면서 이번 사건의 범인처럼 외국인을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범인 같은 생각을 지닌 이가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에는 인도 파키스탄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의 이민자가 섞여 살고 있지만 임금이나 대우 등 여러 면에서 출신국가나 인종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없다는 것. 실제로 노르웨이 정부는 1970년대 이후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다른 유럽 국가보다 개방적이다. 수도 오슬로 인구의 4분의 1이 외국인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정치적, 경제적 이유의 난민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지난해 받아들인 난민만도 5000명이 넘는다. 노르웨이 인구는 약 464만 명이다.

그는 “노르웨이는 누구든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해 살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라며 “돈을 많이 벌더라도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나 자신도 이민자 사업가라는 이유로 질시를 받아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 씨는 1954년 노르웨이로 건너간 뒤 한국식 라면 브랜드 ‘미스터 리’를 선보여 현지에서 주목받는 사업가가 됐다. 이 씨는 2004년 이민자 최초로 노르웨이 국왕에게 ‘자랑스러운 노르웨이인 상’을 받았다(아래 사진). 지니넷 제공
이 씨 역시 노르웨이 다문화주의의 수혜를 본 인물. 노르웨이에 가게 된 것도 6·25전쟁 때 부상을 입어 야전병원을 전전하던 그에게 한 노르웨이 의사가 “시설이 좀 더 좋은 노르웨이의 병원으로 가자”고 권유한 덕분이다. 변변한 학력이나 기술도 없이 접시 닦는 일을 하던 한국인 소년이 이 나라 조리학교에 진학해 지금의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접시 닦던 식당의 주방장이 추천해준 덕분이었다.

이 씨는 “한국도 최근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많아지고 있지만 노동 여건 등 일부 분야에서 차별이 있다고 들었다. 내 회사에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직원을 채용한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를 돕는 고마운 사람들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에게 노르웨이는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었을 뿐 아니라 6·25전쟁 당시 참전해 한국을 도운 은인의 나라다. 이 씨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와준 한국이 지금처럼 성공을 거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 그는 “노르웨이 국민이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지만 그들이 과거 나 같은 이민자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것만 보더라도 이번 상처를 이겨낼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르웨이 국민에게 한국인의 따뜻한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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