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성의 盤세기]1960년 대구서 만든 ‘4월 혁명가요집’ 국내선 꼴찌로 발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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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끝>마지막 SP

‘4월 혁명가요집: 빛나던 사월’ 앨범. 김문성 씨 제공
‘4월 혁명가요집: 빛나던 사월’ 앨범. 김문성 씨 제공
김문성 국악평론가
김문성 국악평론가
꼴찌가 1등 못지않게 대접받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음반 컬렉션입니다. 마지막 음반은 그 가치가 첫 발매 음반 못지않습니다. 1번 음반이 해당 음반사가 추구하는 음악적 가치나 당시 대중적 수준을 판단해볼 수 있는 좌표가 된다면, 마지막 음반은 당시의 사회문화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편린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용 음반은 1911년부터 본격적으로 녹음됩니다. 그 이전에도 미국 음반사들에 의해 전문 예인들의 가무악이 녹음된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제작은 1911년 일본의 축음기상회에 의해서였고, 첫 음반은 박춘재의 수심가였습니다. 레이블에 있는 6001이라는 음반 번호를 통해 첫 음반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열레코드의 마지막 음반은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이라는 단서를 붙여 송만갑의 심청가 음반(6267번·심봉사 눈 뜨고 춤추는 대목)이라고 합니다. 즉, 단정적으로 ‘마지막 음반’이라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SP 음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빅타레코드의 1번은 특이하게도 박춘재의 휘몰이잡가 음반이며, 마지막 음반은 실물이 확인된 것으로는 한정무의 가요곡 ‘봄의 남강’(49515번·1943년 5월)입니다. 이 음반은 그동안 실물이 확인되지 않아, 49514번인 김천애의 가곡 ‘思友’가 마지막 음반으로 기록돼 있었으나, 실물이 확인됨으로써 새롭게 꼴찌의 자리를 이어받게 됐습니다.

콜럼비아레코드 음반도 마찬가지입니다. 1번은 안기영의 성악곡 ‘뚜나’와 ‘리골렛토’(40000-A, B)입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마지막 음반은 1943년 12월에 발매된 경음악 ‘진주라천리길’(40923-A·이운정 작곡)과 ‘변방야화’(40923-B·손목인 작곡)입니다. 이 음반은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발매된 마지막 음반으로 추정됩니다.

1948년 6월 뉴욕의 한 호텔에서 사상 처음으로 분당 33과 3분의 1회전 하는 장시간 음반을 선보입니다. 이른바 LP가 등장한 겁니다. 음질 역시 기존의 SP에 비해 개선된 것이어서 콜럼비아레코드사의 이 혁신적인 제품은 빠른 시간 내에 SP를 대체합니다. 1949년 RCA가 45회전의 EP 음반을 선보였지만 여전히 LP가 대세였습니다. 오아시스, 킹스타, 신세기 등 국내 메이저 음반사들은 순차적으로 SP를 중단하고 LP로 대체합니다.

1957년 미국에서 SP가 사라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 여름까지는 SP와 LP가 50 대 50 비율로 생산되다가 1961년부터는 완전히 발매가 중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전에 제작한 SP 음반들도 1963년부터는 진열대에서 아예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마지막 SP는 어떤 음반일까요? 1960년 겨울에 발매된 음반들이 간혹 확인됩니다. 그 가운데 1960년 12월(당시 참여 음악가는 1961년 2월로 기억) 대구에서 발매된 ‘4월 혁명가요집’은 SP 끝자락에 발매된 것이어서 유력한 꼴찌 음반 후보에 해당됩니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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