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5〉수세미의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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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아름답고 성스러운 추억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육이 될 것입니다. 인생에서 그런 추억을 많이 갖게 된다면 그 사람은 평생토록 구원받은 셈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 알료샤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여기엔 이런 사연이 있다.

죽은 친구는 아버지 때문에 한때 ‘수세미’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수염을 잡혀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이 수세미처럼 보였는지, 아이들은 그 친구를 ‘수세미’라 부르며 놀렸다. 그것은 아이에게 명예의 문제였다. 그는 아버지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온 학급을 상대로 싸웠다. 승산이 없었지만, 그래도 싸웠다. 알료샤가 개입하게 된 것은 집단폭력의 현장을 목격하면서부터다. 아이 아버지의 수염을 잡은 채 끌고 다닌 사람은 알고 보니 알료샤 자신의 큰형이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한 아이가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피가 나게 손등을 깨물어도 나무라지 않았다.

형 대신 속죄를 하려는 알료샤의 중재로 아이들은 ‘수세미’라 부르며 놀렸던 아이와 화해했다. 상처를 주고받던 아이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추억이 교육이라는 말은 따돌림의 대상을 사랑한 경험이 아이들의 삶에서 그 무엇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여러분, 전에 저기 다리 옆에서 그 소년에게 돌팔매질했던 일을 기억하죠? 그다음엔 다들 그 소년을 사랑하게 되었잖습니까?” ‘수세미’가 대변하는 언어폭력과 돌팔매질이 대변하는 신체폭력을 눈부신 사랑으로 바꿔놓은 경험과 그것에 대한 기억, 이보다 더 “숭고하고 강렬하고 건강하고 유익한” 교육이 있을까. 이것이 어찌 아이들만의 일이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체득한 아름답고 성스러운 사랑의 기억은 어른들에게도 훌륭한 교육이요, 구원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수세미#집단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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