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나쁜 남자, 피카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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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파블로 피카소. 캔버스에 유채, 130×97cm, 1932년.
‘꿈’, 파블로 피카소. 캔버스에 유채, 130×97cm, 1932년.
이 그림은 현대미술의 황제로 불리는 피카소의 작품 가운데 최고가다(약 1720억 원). 왜 그토록 비싼 값에 팔렸을까? 피카소의 그림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림 속 모델은 피카소의 연인 마리테레즈 왈테르다. 피카소는 46세인 1927년, 길거리에서 만난 18세의 소녀 마리테레즈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이후 10년 동안 마리테레즈는 연인이며 예술의 뮤즈로 피카소의 작품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23세의 마리테레즈의 잠든 모습을 그린 이 초상화는 피카소가 어린 연인에게 얼마나 매혹당했는지 말해준다.

빨강, 노랑 의자와 초록색 벽지의 강렬한 보색 대비, 마리테레즈의 육체와 의자, 꽃문양 벽지의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 보석목걸이, 노출된 왼쪽 젖가슴, 은밀한 부위를 가린 두 손으로 욕망과 정열을 표현했다.

피카소는 미술계의 돈 후안으로 악명이 높다. 창작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아름다운 연인들을 희생물로 삼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근거도 있다. 피카소의 연인들은 실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정신병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그는 왜 아름다운 여자들을 정복하는 것에 쾌감을 느꼈던 걸까? 프랑스의 지성으로 알려진 작가 지루와 철학자 레비의 대화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겠다.

프랑수아즈 지루=이 여자에게서 저 여자로 미친 듯이 쫓아다니게 하는 광기는 왜 생깁니까?

베르나르앙리 레비=세상의 어느 여자도 관능적 쾌락은 같을 수가 없거든요. … 사람 수만큼 다양하고 새로운 암호처럼 매번 다르죠. 흥분도 다르고 그래서 더 자극적이죠. 돈 후안이란 바로 이런 것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죠.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것은 다른 육체, 다른 목소리, 다른 태도를 만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짜릿한 모험입니까?


피카소는 성적으로 방종한 삶을 살았지만 성욕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면죄부를 받았다.

그가 나쁜 남자가 아니었다면 이 아름다운 그림도 태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피카소#마리테레즈 왈테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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