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없는 도서관?” 안타까워한 건축가가 직접 만든 도서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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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故정기용 교수 유작
김제 지평선중고교 도서관 ‘지혜의 숲’ 오늘 준공식
도서관 맞아?… 어딜 가도 볕이 따라오는 포근한 책숲

건축가 고 정기용 전 교수가 설계한 ‘지혜의 숲’ 도서관 내부. 지평선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연결하는 통로의 빈 공간에 원형으로 된 도서관을 만들었다. 주 기둥은 나무줄기를 형상화했다. 지평선중고등학교 제공
건축가 고 정기용 전 교수가 설계한 ‘지혜의 숲’ 도서관 내부. 지평선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연결하는 통로의 빈 공간에 원형으로 된 도서관을 만들었다. 주 기둥은 나무줄기를 형상화했다. 지평선중고등학교 제공
어디에 있어도 볕이 따라와 비추었다. 지붕 한가운데 동그란 유리 천장을 비롯해 곳곳에 자연 채광창을 낸 덕분이다. 자작나무로 짠 서가와 책상을 곡선으로 배치한 도서관은 둥근 품 안에 학생들을 품고 있었다. 겉에서 볼 땐 평범한 3층짜리 건물이지만 안에는 책과 사람이 따스한 볕 아래서 소통하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사람”이라던 건축가 정기용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1945∼2011)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지혜의 숲’으로 불리는 이 도서관은 지난해 3월 지병으로 작고한 정 전 교수의 유작이다. 도서관이 문을 열면서 그가 설계한 지평선중고교가 개교 10년 만에 완공됐다. 전북 김제시 성덕면에 있는 이 학교는 10일 오후 2시 도서관 개관 및 전관 신축 준공식을 연다. 원불교계 대안학교로 폐교인 옛 성동초등학교를 고쳐 지었다. 2003년 중학교를, 2010년 고등학교를 개교했다.

고 정기용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고 정기용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2010년 초 정 교수님께 학교 도서관을 짓고 싶다고 했어요. 정 교수님은 ‘그래, 학교엔 도서관이 있어야지. 공부만 하는 독서실로 안 만들 자신 있지?’ 하시며 바로 스케치를 해주셨죠. ‘지혜의 숲’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셨고요. 도서관이 완공되면 원형 공간 가운데서 강연을 하시겠다고 했는데….”

8일 기자와 만난 정미자 지평선중고교 교장은 “건물은 물론이고 교육 프로그램까지 이 학교는 정기용 교수님과 함께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준공식을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 전 교수는 2003년 흙과 나무로 이뤄진 생태건축물을 짓고 싶다는 학교 측의 제안에 따라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2005년 도예실, 2007년 목공실이 완성됐다. 아이들이 직접 식(食)과 주(住)를 책임진다는 학교의 교육 목표에 따라 두 건물을 먼저 지은 것. 2007년 남학생 기숙사를, 2010년 여학생 기숙사를 지었다. 여학생 기숙사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도록 천장을 뚫어 햇살과 달빛이 들어오게 설계했다. 2009년 중학교, 2010년 고교 본관이 완공됐다.

정 전 교수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시기에 설계한 ‘지혜의 숲’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건물을 잇는 공간에 있다. 학교 전체로 보면 중앙에 위치한다. 학생들은 아침독서 시간과 방과 후에 이곳에 들러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서가는 모두 7만 권을 소장할 수 있다.

‘책읽는사회 문화재단’의 연구원이자 이 도서관의 사서인 어희재 씨는 “학생들이 책을 편하게 읽어야 한다는 정 교수님의 철학이 도서관에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볕을 받으면 책이 바스라진다는 이유로 창을 없앤 도서관도 많아요. 하지만 정 교수님은 ‘책이 낡으면 바꿔주면 된다. 도서관은 수장고가 아니다’라고 하셨죠. 항상 사람이 중심에 있었어요. 도서관 안에는 서가 뒤편에 창밖 소나무를 바라보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오솔길’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청소년기인 학생들을 배려한 곳이죠.”

고교 3학년 김세림 양(18)은 “공간이 넓고 사방이 탁 트여있는데도 각지고 어두운 독서실보다 조용하고 집중이 잘된다. 특히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좋다”면서 ‘지혜의 숲’으로 발을 옮겼다.

이 학교의 모든 건물 벽은 사계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흙으로 되어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에는 흙을 덧대 발랐고, 아예 흙벽돌로 지은 공간도 있다. 중학교 3학년 박상화 군(15)은 “피부가 살짝만 긁혀도 발갛게 부어오르는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학생들은 학교 건물을 지은 건축가 정기용에 대해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우리 학교 건물은 진짜 좋다”고 만족했다.

김제=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건축#도서관#정기용 교수#지혜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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