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좌익, 보수=우익 간주는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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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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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안 한국학硏 명예교수… 정치용어史 다룬 책서 주장

“진보주의 이념을 비판한다.” “좌파 이데올로기를 신봉한다.”

이런 표현들은 올바른 것일까. 용어와 개념은 그 분야 인식과 사유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그러나 광복 이후 좌익과 우익 세력이 치열하게 싸웠고 지금도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사상과 정치 관련 용어의 왜곡이나 오용이 적지 않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사진)가 오늘날 오용되고 있는 ‘좌익-우익’ ‘진보-보수’ ‘이념-이데올로기’ 등의 용어를 개념의 역사(개념사)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분석한 책 ‘사상과 언어’(북앤피플)를 최근 펴냈다. 양 교수의 분석을 요약해 소개한다.

○ 세계적으로 사회주의엔 ‘좌익’ 사용


광복 직후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좌익’을 사회주의 세력을 의미하는 용어로, ‘우익’을 자본주의 세력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 같은 호칭이 1990년대 초부터 사라졌다. 그 대신 ‘보수’라는 말로 우익과 자본주의 세력을, ‘진보’라는 말로 좌익과 사회주의 세력을 일컫는 관행이 일반화됐다. 이는 ‘좌익=사회주의 세력’ ‘우익=자본주의 세력’을 뜻하는 세계 공통의 용어법이나 우리나라 정치사에 비춰도 옳지 않다.

‘진보’는 광복 직후부터 좌익 세력이 애용했다. 이때 ‘진보’는 사회주의화를,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체제를 뜻했다.

6·25전쟁으로 사라졌던 ‘진보’는 진보당의 출현으로 한국정치 담론장에 다시 등장했고 이때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를 의미했다. 1980년대 말 혁명운동권 세력이 스스로를 ‘진보 세력’ ‘진보 진영’이라 부르고 친운동권 매체가 이 같은 호칭을 사용하면서 확산됐다.

○ ‘liberals’는 ‘자유주의자’로 불러야

비좌익 지식인들이 ‘보수 대 진보’라는 용어를 피하기 위해 ‘우파와 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이는 한자문화권에서 사상적 경향이 동일한 세력을 ‘익(翼·wing)’, 동일한 사상진영에서도 정책 차이로 별도의 정치조직을 만들 경우 ‘당(黨·party)’, 당 내부에서 친분과 당면 문제로 뭉쳐진 집합을 ‘파(派·faction)’로 좁혀 부르는 합리적 정치 세력 호칭법을 무시한 것이다.

영어의 ‘liberals’를 ‘진보 세력’으로 번역하는 일도 흔히 일어나는데 이런 관행도 사상적 혼란을 일으킨다. ‘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번역해야 타당한 것을 ‘진보 세력’이라고 번역함으로써 미국의 ‘liberals’를 사회주의 세력인 한국의 좌익과 같은 계열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 보수는 전통과 경험을 존중하는 것

1980년대 말 좌익 세력이 자신들을 ‘진보 세력’이라고 지칭하고 우익 세력에 ‘보수 세력’이라는 호칭을 떠안기면서 ‘보수’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확산됐다. 그러나 본래 보수주의는 ‘공동체의 운영에 있어서 기본의 전통과 경험을 존중하고 필요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사상’이라는 의미다. 보수주의는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함께 현대의 3대 이데올로기이지만 ‘진보주의’라는 사상은 없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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