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유심칩도 복제…타인 문자메시지 손금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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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6일 03시 00분


배우자 불륜 의심 고객등에
50만∼200만원 받고 팔아
판매업자-브로커 구속


언젠가부터 회사원 윤모 씨(45) 부인의 휴대전화는 항상 잠겨 있었다. 아내가 잠든 사이 전화기를 몰래 가져다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봐도 비밀번호는 풀리지 않았다.

“요즘 아내가 자꾸 늦게 들어와. 누구와 그렇게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지 한시도 전화기를 손에서 떼놓지 않고 말이야.”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이 오른 윤 씨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실례합니다만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부인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죠?”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한 남자가 다가왔다. “부인께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솔깃한 윤 씨는 브로커인 이 남성에게 유흥업소 업주인 이모 씨(43)를 소개받았다.

애인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게 아닌지 의심하던 고모 씨(57)도 도청 장비를 사러 전자상가에 갔다가 브로커를 만나 이 씨를 소개받았다. 고객들이 배우자나 애인의 불륜이 의심된다며 상대방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알고 싶다고 의뢰해오면 총책역할을 한 이 씨는 이를 기술담당 김모 씨(35)에게 전달했다. 김 씨는 휴대전화 판매업자. 그는 손톱만 한 크기의 유심(USIM)만 있으면 누구의 전화기도 복제할 수 있었다. USIM은 3세대(3G) 휴대전화기에 꽂아 등록하는 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로, 이동통신 가입자의 신원과 전화번호 등 정보가 기록돼 있다. 어떤 3G 휴대전화기든 이 USIM을 꽂아 등록만 하면 자기 휴대전화처럼 사용할 수 있다. 영상통화가 되는 3G 휴대전화기의 배터리 뚜껑을 열면 보이는 손톱만 한 칩이 바로 USIM이다.

김 씨는 이 USIM에 의뢰인이 뒷조사를 요청한 이들의 정보를 옮겨 놓고 이를 자신이 갖고 있는 빈 휴대전화기에 꽂아 일종의 ‘복제폰’을 만들었다. 이때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USIM 변경을 신청해야 하지만 휴대전화기 판매업자인 김 씨의 전화 한 통이면 금방 해결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휴대전화는 번호도 정보도 모두 뒷조사 대상의 것과 똑같았다. 전화기가 준비되면 김 씨는 이동통신 가입자의 문자메시지 송수신 내용을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자매니저’ 서비스에 가입했다. 이 서비스에 가입하려면 본인의 휴대전화로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문자메시지로 전송되는 인증번호는 이미 김 씨가 손에 쥐고 있는 복제폰으로 들어오게 돼 있었다. 김 씨 등은 이런 수법으로 올해 1월부터 최근까지 37명의 명의를 도용해 ‘문자매니저’ 서비스에 가입했다. 이렇게 만든 ID와 비밀번호는 뒷조사 전문 브로커와 심부름센터에 넘겨 의뢰인에게 건당 50만∼200만 원에 팔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5일 배우자나 애인의 외도를 의심하는 고객들에게서 의뢰를 받아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훔쳐 볼 수 있도록 해준 혐의로 이 씨와 김 씨를 구속하고 연락책인 공범 양모 씨(31)를 불구속 입건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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