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라, 청중이여… 황제의 노래가 멈췄다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9월 7일 03시 01분



세계적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타계

“하늘이 내린 그의 미성(美聲)을 다시 들을 수 없다니….”

20세기 최고의 ‘황금빛 목소리’를 지닌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6일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해 7월 췌장암 수술을 받았으며 지난달 고열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하는 등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의 죽음에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이 슬픔에 빠졌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는 검은색 조기가 내걸렸고, 런던 로열오페라는 “그는 지구상의 일상을 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 흔치 않은 예술가였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파바로티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꼽혀 왔다. 그러나 금빛 찬란한 광채를 가진 그의 미성은 역사상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것이었다. 도밍고는 이날 “나는 신이 내린 그의 영광의 목소리를 늘 찬탄했다. 그것은 테너의 최저음에서 최고음까지 아우르는 매우 특별한 음색이었다”고 애도했다. 스페인에 머무르고 있는 호세 카레라스도 “내가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에 있는 파바로티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손수 빵과 토마토 요리를 해 주었다”며 친구를 잃은 슬픔을 표현했다.

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태어난 파바로티는 26세인 1961년 레조 에밀리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포 역할로 데뷔했다. 당시 전 세계에 불어닥친 로큰롤 열풍으로 썰렁해진 오페라극장에 파바로티는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였다.

1972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친 도니체티 ‘연대의 딸’ 공연에서 그는 ‘하이C’(3옥타브 도)의 고음을 내는 아리아를 여러 차례 완벽히 소화해 찬사를 받았다. 특히 1988년 독일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사랑의 묘약’ 공연에서는 무려 1시간 7분 동안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163회의 앙코르 요청을 받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파바로티가 클래식 음악 팬들이 아닌, 전 세계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90년 로마 월드컵 전야제에서 주빈 메타가 지휘한 ‘3대 테너 콘서트’에 참여하면서였다. 당시 그가 부른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는 그의 대표곡이 됐다. 이후 그는 전 세계를 돌며 팝가수들과 함께 대규모 야외 공연을 열기도 했다.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씨는 “20세기 성악가 중 엔리코 카루소의 위대함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대중적인 인기에서 파바로티를 따라갈 성악가는 없었다”고 말했다.

파바로티는 1977년 이화여대에서 독창회를 한 것을 비롯해 1993, 2000, 2001년 내한공연을 했다. 파바로티는 2003년 12월에 35세 연하의 개인비서인 니콜레타 만토바니 씨와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61년 결혼한 부인 아두아 베로니 씨와는 2000년 이혼했다. 그는 베로니 씨와의 사이에 장성한 세 딸을 두고 있으며, 만토바니 씨에게서 얻은 딸 알리체 양은 현재 네 살이다.

지난해 7월 뉴욕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을 당시 파바로티는 고별 순회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부른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결국 그의 마지막 노래가 됐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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