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연기 인생 50년 ‘국민배우’ 안성기 씨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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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영화 인생 50년을 맞은 ‘국민배우’ 안성기. 그는 “충실하면 명예 돈 인기는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올해로 영화 인생 50년을 맞은 ‘국민배우’ 안성기. 그는 “충실하면 명예 돈 인기는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길이 막힐까봐 서두르다가 되레 30분이나 일찍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배우.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말이 제일 싫다는 배우.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감히’ 어울리는 배우. 바로 안성기(54)다. 올해로 연기자 인생 50년에 접어들었다. 영화 촬영장을 놀이터 삼아 뛰놀던 코흘리개 다섯 살 꼬마는 어느덧 ‘선생님’ 소리를 듣는 촬영장의 최고참이 됐다. 올해 열린 대종상 시상식에서 그는 후배 영화인들이 선정한 ‘50년 특별상’을 받았다.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50년을 맞은 소감은 어떤지요.

“고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10년 정도 공백기는 있었지만 아역으로 시작해 50년간 영화를 계속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이렇게 버텨 주는 게 제가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50년을 돌아보며 “은근함은 있었지만 화려함은 없었던 것 같다”며 “난 한번도 ‘오빠’였던 적은 없고 늘 ‘아저씨’였다”며 웃었다.

그의 첫 영화는 1957년 개봉한 ‘황혼열차’. 김지미와 ‘데뷔 동기’다. 너무 어릴 때여서 겨울에 촬영하느라 추웠던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70여 편에 이르는 아역 작품 중 여덟 살 때 찍은 ‘십대의 반항’에 애착이 간단다. 이 영화로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 ‘얄개전’을 끝으로 자연스럽게 영화계를 떠났다. ‘하이틴 영화’가 등장하기 전이어서 고등학생이 된 그가 맡을 역할이 없었다.

―잘나가던 아역스타들이 사춘기 때 방황하는 경우도 많은데 어떻게 그 시절을 넘겼는지요.

“가정교육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늘 반듯하셨거든요. 그래서 아이에겐 가정환경과 집안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녁을 겸해 이루어진 인터뷰가 너무 ‘반듯’한 것 같아 술을 시켰다.

―술에 취할 때도 있나요.

“평소엔 술을 잘 안 하는데, 1년에 한두 번은 비틀비틀할 정도로 마시죠. 근데 그 흐트러지는 모습을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해요. 특히 (설)경구가 얼마나 좋아하는지….”(웃음)

그는 “어릴 때 봤던 어른들을 커서 다시 만났을 때 달라져 있는 모습에서 세상을 배웠다”고 했다. 누가 가장 실망스럽더냐고 묻자 그는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고, 백세주를 세 병 비울 때까지도 끝내 ‘험담’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출연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흔히 꼽는 작품이지만, ‘기쁜 우리 젊은 날’ ‘바람불어 좋은 날’ ‘만다라’ ‘하얀 전쟁’ ‘투캅스’….”

―출연을 후회한 작품은 없나요.

“왜요, 있죠. 하지만 만드신 분도 있는데 그것도 말 못하죠.”(웃음)

요즘 스타들은 영화 출연을 거절할 때 매니저를 통해 뜻을 전달하지만 그는 거절도 꼭 직접 한다.

“지금까지 영화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남에게 거절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기 싫은 영화를 거절하는 것까지도 배우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에 앞서 인간적인 도리이기도 하고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라디오 스타’로 얘기를 옮겨 갔다. 그는 한물간 록스타(박중훈)의 곁을 20년간 지켜 온 인간적인 매니저 박민수 역을 맡았다.

“강원도 영월에서 촬영했는데 주민들이 방해될까봐 그랬는지 조용하시더라고요. 근데 너무 조용해서 (박)중훈이랑 ‘우리 이래도 되냐, (장)동건이가 왔어도 이랬겠느냐’며 웃었죠.”

―주연만 하다가 처음 조연을 맡았을 때 속상하진 않던가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에서 처음 조연을 맡았는데 조금 나와도 큰 느낌이 나는 역이었어요. 그래서 큰 충격 없이 조연으로 넘어갔죠. 이 영화 덕분에 깨달았어요. 등장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역할이냐가 중요하다는 걸….”

안성기라는 배우를 통해 한국 영화의 숱한 불후의 캐릭터들이 탄생했다. 또 만인지상의 대통령(‘한반도’ ‘피아노 치는 대통령’)부터 밑바닥 인생의 거지(‘고래사냥’)까지, 말 그대로 안 해 본 직업도 없다. 그에게 어떤 직업이 가장 좋더냐고 묻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물론 배우가 최고”라고 했다.

“1980년대 한창 시절엔 영화며, TV며, CF며 정말 많이 쏟아졌죠. 보통은 그렇게 잘나갈 때 확 ‘땡기죠’. 주위에서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속삭이면 다들 흔들리기 쉬워요. 하지만 전 자제했어요. 왜냐하면 난 영화를 오래 하고 싶었고, 평생 할 거니까요.”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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