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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게임지존 '지오'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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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게임지존 '지오'가 있었네

입력 2003-09-18 16:34수정 2009-10-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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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하며 헤매는 동안 일찌감치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본업과 연결시킨 마니아들이 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프로게이머들이 그들.

현재 프로게임단 가운데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팀은 ‘슈마 GO’(이하 ‘지오’로 표기)다. 프로게임협회에 따르면 이들은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849전 459승 354패, 승률 58.3%로 10여개가 넘는 프로게임단 중 1위다.》

‘지오’는 소속팀이 해체돼 갈 곳 없던 게이머들과 아마추어들 8명이 지난해 3월 모여 만든 팀이다. 대기업의 후원으로 연봉을 받는 다른 프로게임단과 달리, 아무 후원 없이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출전 경기마다 내리 고배를 마시는 ‘눈물 젖은 팀’이었다.

그러나 올해 6∼8월 열린 MBC게임 팀리그, MBC게임 스타리그, 온게임넷 스타리그 등 프로게임계의 4대 리그 중 3개에서 우승하며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불리게 됐다. 덕분에 컴퓨터 주변기기 업체인 슈마일렉트론의 후원을 얻어 팀 이름도 ‘슈마 GO’로 바뀌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20대 프로게이머들이 팀으로 성공한 비결은 뭘까.

●강자가 나를 강하게 한다

‘지오’는 멤버들의 기량이 고르다. 프로게임협회 장현영 기획팀장은 “특정 선수의 성적이 높다기보다 전체 승률이 평균 50% 이상을 기록해 팀 승률이 1위가 됐다”고 분석한다. 3개 리그를 석권할 때도 강민(21), 서지훈(18) 등의 선수들이 돌아가며 우승을 거뒀고 팀 리그 우승에는 김근백(22), 이재훈 선수(22)가 크게 기여했다.

‘지오’에서 선수들은 서로를 강하게 만드는 동반자다. 게임 해설가로 활동하는 2명을 제외하고 프로토스족 2명, 저그족 2명, 테란족 2명 등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종족별로 걸출한 선수들이 균등하게 모여 있다. 그 덕에 모든 선수들의 실력이 동반상승하는 효과를 얻었다.

멤버들에게 팀이란 ‘함께 한다’기보다 ‘서로 자극하는’ 것이다. 경쟁심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한동안은 매주 수요일 자체 랭킹전을 치르기도 했다. 2001년 월드사이버게임즈 챌린지의 우승자인 박태민 선수(19)는 불쑥 “서지훈과 강민이 올해 리그에서 우승하고 돌아왔을 때 열등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면 처량해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왜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열등감이 없으면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지 않나요? 우리 같은 프로게이머들에겐 강력한 경쟁상대가 늘 필요해요.”

●나는 프로. 규율은 내가 정한다

프로게이머들은 집을 얻어 합숙하는 공동생활을 한다.

상당수의 프로게임단은 하루 연습량과 외출시간, 외박일 등을 정해 운영한다. 그러나 ‘지오’에는 연습과 일상생활에서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오전 11시 기상’이 유일한 규칙.

“우리 팀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것이 규칙예요.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놀러나가도 뭐라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더 무서워요.”(김근백)

“모두 게임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 모였는데 규율을 잡을 필요가 있나요?”(최인규·22)

개성을 발휘하되 공동체의 규범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지시나 규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의 생활방식은 지난해 월드컵 때 ‘질서정연하게’ 광기를 발산했던 ‘붉은 악마’의 행동 양식과도 닮았다.

서지훈 선수는 지난해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에 들었을 때만 해도 ‘자율 연습’에 익숙지 않았다. 그는 “4강전에서 패한 뒤 올 2월부터는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연습에 매달렸다”고 한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하루 20게임은 기본이고 많을 때는 30게임씩 내리 하기도 했다. 올 7월 그는 이 리그에서 우승했다.

조규남 감독(32)은 “강제된 연습량을 채우려 억지로 하는 게임과, 자신이 하고 싶어서 집중적으로 하는 게임은 질이 다르다”고 자율연습의 장점을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프로게임계 4대 리그 중 3개를 석권한 게임단 ‘지오’의 멤버들. 이들은 개성 강한 ‘신세대’이면서도 팀으로 성공했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게임에는 위아래가 없다

청년 8명이 합숙하는 공간이라서 군대식 위계질서가 지배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오’안에서 나이에 따른 서열 의식은 무딘 편이다.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이들에게 상대방은 형, 동생이 아니라 상대 선수, 종족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단 경기에 들어가면 상대방을 종족이라고 생각하지, 그 뒤의 게이머는 생각하지 않아요. 나 스스로도 강민이 아니라 ‘프로토스족’이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구요. 다른 게이머와의 차이는 얼마나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고 그것을 성공시키느냐에 있죠.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실력이 월등한지 아닌지 그런 건 신경 안 써요.”(강민)

서지훈 선수는 ‘지오’ 내에서 서열관계가 고착되지 않는 이유를 “끝없이 경쟁심리를 유발시키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자체의 속성에서 찾았다.

“스타크래프트는 게임을 할 때마다 상황이 다르고 전술이 끝이 없어요.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져 게이머가 될 정도면 한 사람이 오랫동안 최고에 머물 수 없다는 걸 다 알아요. 그러니까 나이가 어리거나 이제 막 프로가 된 신참이어도 주눅들 필요가 없는 거죠.”

●조용한 리더십과 피그말리온 효과

프로게임단도 스포츠구단처럼 감독이 있다. 게임단의 감독은 ‘플레잉 코치’와는 다르다.

조규남 감독이 생각하는 ‘감독의 일’은 “사람의 일”이다. “감독의 역할은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 스트레스가 쌓일만한 여지를 없애는 것”이라는 설명. 그래서 ‘맨투맨 관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일부러 연극을 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고 한다.

“선수들이 때론 정이 떨어질 정도로 합리적이고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이에요. 그래서 청소를 하거나 물건을 들여올 때 어린 선수들이 벌떡 일어나지 않으면 ‘왜 앉아있냐’고 일부러 호되게 나무라죠. 반면 과거 후배들이 선배 빨래까지 해주는 질서에 익숙한 고참 선수들에겐 ‘네 일은 네가 해라’고 혼내요. 에이스로 활약하다 침체에 빠진 선수들에겐 ‘아까 누가 네 경기를 유심히 보더라’는 식으로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하구요.”

그는 감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격려는 “믿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최고를 기대하는 그 자체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적용하는 것이다.

“전략전술을 짜는 것은 선수들 몫이죠. 나는 선수들에게 ‘왜 이 일을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해요. 게임에서 져도 상관없으니 후회만 하지 말자,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고 일단 의기투합하는데 승부를 걸죠, 그게 자신감으로 전환되고 선수들이 최대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을 여러 번 봤거든요.”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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