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에 감춘 비밀]생 텍쥐페리 실종을 둘러싼 의문

  • 입력 2000년 7월 31일 14시 50분


"천생 하늘에서 죽을 녀석이야."

생 텍쥐페리가 해군사관학교에 낙방하고 1920년 전투기 연대에 들어갔을 때, 그를 가르친 교관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비행기의 착륙법을 익히기도 전에 무작정 연습기를 몰고 하늘로 올라간 그의 무모함을 탓한 말이지만 그 말은 그대로 예언이 됐다.

지난 6월 29일로 이 세상에 나온 지 꼭 100년이 되는 생 텍쥐페리. 그는 지구인들에게 《어린 왕자》라는 아름다운 책을 선물로 남기고 하늘로 사라졌다. 조종사에게 비행 중 실종은 곧 죽음을 의미하지만 생 텍쥐페리의 실종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공식적으로 생 텍쥐페리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시각은 1944년 7월 31일 오전 8시 45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때였다. 그는 그날 정찰비행 임무를 띠고 P38 라이트닝 비행기에 올랐다. 귀환시각은 오후 1시였고, 비행기에는 6시간분의 연료만이 채워져 있었다.

그의 실종 사실이 확인된 것은 그로부터 여덟 시간이 지난 오후 2시 30분. 귀환 시각을 넘긴 지가 한참인데도 아무런 교신조차 없었다.

그의 실종에 대한 지금까지의 정설은 독일군에 의한 격추설이다. 마지막 비행이 연합군의 대대적인 프로방스 상륙작전에 대비한 정찰 비행이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97년 여름에는 생 텍쥐페리의 실종 당시 카르케이란느 바닷가에 있었던 잔 부데라는 사람의 증언으로 더욱 확실해지는 듯 했다.

그는 "내 생각에 그것은 두개의 부표를 단 수상비행기였다.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졌기 때문에 내 코 앞에서 내릴 것 같았다. 비행기는 갑자기 해수면과 하얀 거품 사이에서 멈췄다. 잠시후 비행기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바닷물이 거칠게 거품을 일으키는 것을 봤다. 그 뒤는 침묵 뿐이었다."고 말하며 그 시각은 낮 12시에서 12시 30분이라고 했다.

한편 독일군의 문서보관소에서는 당시 남프랑스 지역에서 대공포화나 공중전에 의해 격추된 비행기는 모두 5대였다는 문서가 나왔다. 이것은 미군 기록과도 일치하는데, 이 가운데 한 대가 바로 생 텍쥐페리의 비행기였으리라는 것이다. 1944년 9월 3일, 남프랑스의 한 해안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시신도 생 텍쥐페리의 죽음과 연관됐다. 주검의 발견 장소가 생텍쥐페리가 추락했을 지점과 해류의 흐름상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게다가 시신의 상처로 미뤄봤을 때 비행기에서 튕겨나온 조종사가 확실하고, 그 지역의 노인들이 그 시신의 무덤을 가리켜 '시인의 무덤'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생 텍쥐페리의 시신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옴에 따라 유전자 조사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언제까지고 보존되던 그 무덤은, 그러나 묘지 재정리 작업 때 사라져버려 유전자 조사의 가능성조차 사라져 버렸다.

반면 자살설도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자살설의 첫번째 증거로 드는 것이 1931년 출간된 대표작 《야간비행》이다. 이 책에는 폭풍우 치는 밤에 비행을 하게 된 우편수송기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조종사 파비앙은 기지와 연락을 취하려 하지만 연료는 30분 분량 밖에 남아있지 않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폭풍우를 피해 구름 위, 달과 별들이 초롱초롱한 고공에 올라 지상에서의 행복, 일상생활에서의 개인적 행복을 사색하며 결국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고공 비행을 하면서도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것, 또 그의 아내였던 콘쉬엘로가 남긴 회고록에서 생 텍쥐페리가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었다는 것 등이 자살설을 믿도록 부추겼다. 별나라로 사라진 영원한 어린 왕자, 생 텍쥐페리의 죽음이 신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최근 생 텍쥐페리의 비행기 잔해와 그와 아내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가 인양되면서 그의 실종을 둘러싼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먼저 발견된 것은 팔찌로 1998년 10월, 대서양 연안 항구인 프랑스 마르세유 부근의 암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만에서 넙치잡이 어부인 장 클로드 비앵코의 그물에서 발견됐다. 은으로 만든 팔찌에는 생텍쥐페리와 그의 아르헨티나인 부인 콘쉬엘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은팔찌와 함께 인양된 정찰기의 무선 통신기의 받침대가 생 텍쥐페리가 탔던 '라이트닝 P38기'와 같은 기종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바로 지난 5월 23일 마르세유 연안 프리울 섬 근처 해저 85m 지점에서 잠수부 뤽 방렐이 찾은 비행기 잔해 역시 이 기종이다. 왼쪽 랜딩기어, 터보 과급기 등의 잔해를 살펴본 전투기 전문가 필립 카스텔라노는 이 부품이 문제의 정찰기 잔해임을 확인했다. 당시 프랑스 해안에서 실종된 P-38기는 12대인데, 생 텍쥐페리가 탄 J형은 4대에 불과하며, 다른 3대는 소재가 이미 확인됐기에 신빙성은 더욱 높다.

방렐씨는 다른 사람들이 잔해를 훔쳐갈 위험이 있다며 정확한 장소는 밝히지 않았지만 98년 팔찌를 발견한 장소 바로 옆이라고 밝혀 생 텍쥐페리의 최후가 어느 정도 밝혀지게 됐다. 자살인지 혹은 격추인지 아직도 확실치 않다. 다만 사람들은 적의 포탄에 맞아 처참한 최후를 맞는 생 텍쥐페리를 상상하기보다 연료 없는 비행기로 구름 위 어린왕자의 별을 찾아가는 그의 신화를 간직하고 싶어할 뿐이다.

이현주(북코스모스 http://www.bookcosmos.com)hyunjoo70@bookcosm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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