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라는 이름의 질문[서광원의 자연과 삶]〈16〉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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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정말이지 물총새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 시냇물 위 어딘가에서 물속을 찬찬히 살핀 다음, 되겠다 싶으면 총알처럼 물속으로 들어가 피라미를 낚아챈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길고 날카로운 부리를 앞세우고 날개를 몸에 착 붙인다.

물론 피라미도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 새끼손가락만큼 작은 녀석들이지만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그 나름의 생존법을 가졌다는 것. 녀석들은 하늘 어딘가에서 작심하고 내리꽂히는 물총새를 볼 수는 없지만, 입수할 때의 파동을 느낄 수 있다. 아니, 느껴야 한다. 그것도 빨리. 그래서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위기가 들이닥치면, 그 순간 팽팽하게 당긴 활처럼 몸을 C자로 확 비튼다. 굳이 시간을 재자면 0.005초. 이 찰나의 순간이 물총새의 날카로운 부리를 비켜가게 한다. 몇 년 전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개그맨 김국진이 이걸 보고 감탄의 한마디를 던졌다. “피라미도 (생존의) 노하우 하나쯤은 있는 세계!”

맞다. 이 세상을 살려면 이런 ‘노하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실제로 피라미보다 약간 크다 싶은 작은 새우는 사냥꾼이 잡았다 싶은 순간, 꼬리를 힘차게 휘둘러 등이 구부러지는 C자를 만든다. 몸을 확 튕기는 것이다. 이렇게 약간의 거리를 확보한 다음, 잽싼 뒷걸음질로 사라진다. 꽤 성공률이 높은 생존법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도 사실은 이런 위기 모면의 움직임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우리에게야 하찮게 보이지만 녀석들의 세상에서는 그것도 재주다. 북미의 뿔도마뱀은 위기일발의 순간, 눈에서 피를 확 뿜어내 상대를 깜짝 놀라게 한 뒤 재빨리 사라진다.

물론 이런 위기 대응법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다. 운이 나쁘거나 서툴러서 그럴 수도 있고, 상대의 실력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번번이 위기 대응에 실패한다면? 이건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다. 모면한다고 오래 살 수도 없다. 진짜 위기, 생존의 위기다. 예를 들어 상대가 위기 대응법을 무력화해버리는 능력을 터득하는 순간, 생존은 낭떠러지 위에 서게 된다.

지금까지 잘 통했던 방법이 효과가 없다면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은 더 빨리 지치게 할 뿐, 어떤 쓸모도 없다. 해오던 최선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 새로운 방식의 최선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에게 밀려오는 위기들이 심상찮다. 해오던 방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개선이 아니라 혁신을, 방법이 아니라 방식을,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진화를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위기를 통해 생존력을 테스트한다. 위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살 수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살아 있으려면 이런 세상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위기 대응법 무력화#생존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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