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TV만 보니?… 난 ‘달글’로 수다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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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심미경 씨(32·여)는 드라마가 시작하자 곧바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았다. 즐겨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한 그는 ‘[불판]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라는 게시물에 들어갔다. “같이 봐요!” “훈남 등장! 눈이 상쾌해지네요”와 같은 댓글이 순식간에 가득 올라오고 있었다. 드라마나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올리는 이른바 ‘달글’(달리는 글)이었다. 게시판은 이런 달글들로 후끈 달아올랐다.

심 씨는 “드라마와 함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달글’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함께 수다를 떨다 보면 드라마가 더욱 재미있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방송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며 의사소통을 하는 문화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TV에서 인기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판’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온다. 불판은 고기를 굽듯 어떠한 이슈를 인터넷에 올려 급속하게 달아오르게 하는 공간이란 뜻이다.

이러한 게시판에는 수백 개에서 많게는 수만 개의 달글이 도배된다. 드라마의 경우 출연자들의 행동과 대사, 연기 등 모든 것이 달글의 대상이다. 예컨대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키스를 했다면 ‘남자가 키스를 못하네’ ‘여배우가 리드하는 느낌’ ‘우리 오빠 안 돼’ 등의 달글이 줄을 잇는다.

남성들이 많은 커뮤니티는 스포츠가 불판의 주 메뉴다. 축구 마니아인 김재훈 씨(27)는 “마치 모두들 감독이 된 듯 경기를 분석한다”며 “커뮤니티 참여자들이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한 평가는 물론 작전과 포메이션까지 백가쟁명 식으로 내놓는 달글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라고 말했다. 해당 방송이 끝나면 순식간에 달글이 급감하고 게시판은 문을 닫는다.

그런가 하면 취업과 공부 등 젊은 세대들의 관심사에 대한 인터넷 불판도 종종 열린다. ‘30일 취업설명회 불판’ 등의 게시물이 올라오면 ‘취업 설명회에 가나요?’, ‘이 회사 괜찮은가요?’ 등 각종 고민들을 털어놓고 상담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년문제 연구기관인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전국 20대 남녀 954명을 조사해 올 6월 발표한 결과에서 TV 시청 중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지인과 메신저로 대화’(65.9%),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을 보거나 대화’(33.6%) 등이었다. 임희수 연구원은 “젊은 세대는 더 이상 TV 시청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들과 반응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김선규 인터넷 문화전문가는 “‘혼밥’ ‘혼술’(혼자 밥 또는 술 먹기)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확인받고, 남의 반응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도 강해진다”며 “달글과 인터넷 불판은 이런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달글#인터넷#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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