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TEST]고급 전통주 기자들이 마셔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농익은 향에 취해 한잔… 달달한 뒷맛에 또 한잔…

설 명절을 앞두고 선물용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히 9일 삼성그룹 사장단 신년 만찬에 전통주가 건배주와 디저트주로 등장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다. 이 자리에 나온 ‘백련 맑은 술’과 ‘자희향’은 일부 백화점에서 준비한 선물세트가 이틀 만에 동이 나기도 했다.

이 같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전통주 시장은 아직 국내 전체 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미만이다. 특히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2∼0.5%에 불과한 청주(약주)는 해마다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건희 건배주’ 같은 일시적인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침체된 전통주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청주와 소주는 전통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고급화해 맥주나 와인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한국전통주진흥협회와 협약을 맺고 설을 맞아 다양한 고급 전통주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전통방식으로 고유의 맛을 살려 빚은 청주 3종과 소주 2종을 동아일보 소비자경제부 기자 4명이 마셔보고 평가해 봤다. 현재 대학생 신분인 손현열 인턴기자도 참여했다.

자희향


유기농 찹쌀과 누룩을 사용해 전통방식으로 빚은 술로 120일 동안 옹기에서 숙성시킨 고급 청주다. 술의 향이 좋아 차마 삼키기 아쉬웠다는 전통주 ‘석탄향주(惜呑香酒)’를 300년 전 기록을 바탕으로 재현했다. 9일 삼성그룹 사장단 신년 만찬에 올랐던 전통주 2종 중 하나다. 찹쌀로 빚어 단맛이 강해 디저트용으로 좋다. 하지만 알코올 농도 12도로 가볍게 마시기엔 도수가 높은 편이다. 가격은 2만 원.

김용석 기자=단맛은 3개 청주 중 가장 강하다. 밥 먹고 나서 먹기에 디저트용으로 딱이다. 치즈와도 잘 어울린다.

권기범 기자=구수한 맛이 날 것 같은 향인데 의외로 시고 톡 쏘는 맛도 있다. 첫맛은 일반적인 청주에 가깝지만 중간에 단맛이 나고, 끝으로 갈수록 향이 강해져 감칠맛이 있다. 신맛이 나서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술이다. 캐주얼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치즈와 함께 먹어야 할 것 같다.

최고야 기자=평소에 술을 못하는 사람으로서 맛으로만 평가한다면 일단 달고 상큼해서 먹기에 좋다. 디저트용이라서 그런지 독하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먹어본 적 없는 맛의 술.

황수현 기자=백세주나 매화수보다는 고급스러운 맛. 술인지 음료수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맛있다고 계속 마시면 쉽게 취할 것 같아 주의해야 할 듯.

손현열 인턴기자=목 넘김이 좋고 향긋하다. 뒷맛이 입안에 오래 남아 있다. 와인은 쓴맛이 뒤에 남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술은 달달한 맛이 끝까지 남아 있어 좋다.

백련 맑은 술


‘백련 맑은 술’ 역시 ‘이건희 건배주’로 유명해진 제품이다. 충남 당진 신평양조장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 빚고 있는 이 술은 당진 해나루쌀과 백련 잎을 사용해 맑은 빛깔을 지니고 향이 은은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장려상을 받았고 세계 3대 술 품평회 중 하나인 영국 국제주류품평회에서 브론즈 메달을 수상했다. 알코올 농도는 12도이고 가격은 1만2000원.

=양식과 함께 먹으면 좋을 듯하지만 한식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텁텁한 맛이 덜하고 깔끔해 식전에 건배주로 딱 어울린다. 일반 청주 고유의 향이 진하지 않아 세련된 느낌이 든다.

=일반 청주보다 가볍고 화사한 향이 난다. 첫 향이 상당히 부드러워서 맛도 역시 부드러울 것 같다는 생각으로 들이켜게 되는데 의외로 끝맛이 강해서 놀랍다. 쌀로 만들어서 다른 전통주보다는 맛이 깔끔하다.

=약간의 톡 쏘는 맛이 구수한 맛과 함께 섞여 있어 오묘하다. 좋게 말하면 신비로운 맛이고 다르게 말하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맛. 은은한 향에 비해 맛은 강한 편.

=병 디자인도 그렇고 향이 단아한 느낌이라서 부드러울 것 같아 과감하게 들이켰는데 목이 화끈거릴 정도로 강하다. 반전의 매력이 있는 술이라고 할까. 한 번에 털어 넣었다가는 갑자기 ‘훅’ 가는 수가 있겠다.

=마시고 나면 말할 때 내뿜는 바람마저 향기로워질 것 같은 술. 올 설에 차례 지낼 때 음복용으로 잘 어울리는 술이다. 향이 좋아서 소개팅에 나가 호감 있는 상대와 가볍게 한잔 즐길 때에도 좋겠다.

한산 소곡주

소곡주는 백제 왕실에서 즐긴 술로 누룩을 주원료로 100일간 발효해 빚어 감미로운 술맛이 특징이다. 맛이 좋으나 알코올 농도가 18도로 높은 편이라 자기도 모르게 취기가 올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칭이 있다. 충남 서천군의 한산에서 우희열 여사가 1997년 충남무형문화재로 승계 받아 소곡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주원료로 찹쌀이 쓰이고 들국화 메주콩 생강 고추 엿기름 등 참살이 위주의 원료로 빚었다. 가격은 1만6500원.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과 함께 음복하기 좋은 술. 평상시라면 기름진 고기와 함께 먹어야 강렬한 맛이 상쇄될 듯.

=곡물 맛이 진하고 향까지 진해서 젊은층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음식을 곁들이지 않고 술만 먹기에는 쓴맛이 강해 부담스럽다. 1500년 전통을 가진 술이라는데, 진짜로 1500년 전에 만든 술을 먹는 것 같다. 매운 닭발이나 떡볶이 등과 같은 음식과 먹으면 잘 어울릴 듯.

=냄새에 한 번 놀라고 맛에 한 번 놀란다. 곡물을 섞은 듯한 독특한 향이 압도하고 입에 머금으면 약처럼 쓰다. 진하고 풍부한 술맛의 강한 여운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술이 아니라 몸에 좋은 한약을 먹는 것 같다. 쌍화차와 비슷한데 처음 느끼는 이 맛은 영 낯설다.

=쓴맛의 음식을 먹었을 때 혀를 감싸는 텁텁한 느낌이 있다. 바로 물을 더 마셔야 할 것 같다.

문배주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이기춘 선생 집안에서 5대째 만드는 문배주는 조 찰수수 쌀 원료로 하는 고급 소주다. 보통 문배주는 알코올 농도가 40도에 이르는 독한 소주지만 특허기술을 활용해 증류 숙성시켜 알코올 농도를 25도로 낮춰 목 넘김이 부드럽게 만들었다. 문배주에는 토종 배의 한 종류인 문배의 과실이 전혀 들어가지 않지만 숙성되고 나면 문배의 진한 향이 느껴진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조와 수수만으로 배합 비율을 맞추고 적정 온도를 유지해 진한 향기를 만들어 낸다. 가격은 2만7000원.

=끝맛이 가벼워 기분 좋게 오랫동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술을 즐겨 먹지 않는 사람들은 독해서 익숙하지 않을 수 있으나 분명 잘 만든 술이다.

=첫 향이 역하다. 예전에 40도짜리 문배주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첫맛이 강하긴 했어도 보드카 같은 느낌에 잘 마셨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도수를 25도로 낮추니 물 탄 소주 같은 느낌이라 실망이다.

=목을 타넘어 가는 센 맛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맛과 향이 모두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향이 너무 강해서 거부감이 들었는데 막상 맛은 생각보다 맹맹하다. 냄새는 굉장히 쓴 술일 것 같지만 막상 마시면 물인가 싶을 정도로 맛이 연해 일반 소주보다 오히려 약한 것 같다. 보드카 같은 느낌인데 보드카가 칵테일에 들어가서 융화되듯이 다른 술과 부드럽게 합치지는 못할 것 같다.

=보드카 같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든다. 하지만 보드카만큼 마실 때 청량감이나 상큼함이 없으며 맛이 더 진하고 묵직하게 느껴진다.

진도 홍주


진도 홍주는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주로 쌀과 보리를 발효 및 증류해 만든 38도의 고급 소주다. 발효, 증류 과정을 거친 뒤 지초(芝草)의 용출 과정을 한 번 더 거치는 것이 특징이다. 보리와 쌀 누룩이 갖는 향과 맛을 최대한 살린 홍주 원주에 술을 마신 뒤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초를 넣어 붉은색을 냈다. 2013년 우리술품평회 일반증류주 부문 장려상을 받았다. 가격은 5만 원.

=향이 독특해서 먹는 즐거움을 주기는 하나 다른 음식과 함께 먹으면 맛이 섞일 듯하다.

=장담컨대 이걸 먹고 나면 소주가 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한 번 먹어보면 소주의 쓴맛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혀에 닿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강렬함 그 자체. 색은 자줏빛으로 영롱하고 향은 은은한데 맛은 안심하고 있던 중 뒤통수를 때리듯 미각을 마비시킨다.

=색은 석류 주스 같아서 맛있을 것 같은데 먹고 나면 입에서 불을 뿜어내게 만들 것 같은 술. 소량만 마셔도 한동안 입속에서 ‘훅’ 하는 술기운이 느껴진다.

=코끝까지 매워져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막혔던 코가 뚫릴 정도로 도수가 높다. 화끈한 맛이 매력적이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