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달라도 다함께 오늘 이 순간을 사랑하라…뮤지컬 ‘렌트’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화려한 무대와 특수효과가 넘쳐나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렌트’는 ‘이단아’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다. 특별한 춤 장면도 없다. 주인공들은 모두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다. 마약 중독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크로스드레서(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1996년 초연 이래 ‘렌트’가 여전히 유효한 까닭은? 중독성 강한 록 음악, 탄탄한 스토리, 그 바탕을 지지하는 실험정신이다. 다음 달 내한 공연에 앞서 일본 도쿄 아카사카 ACT시어터에서 30일까지 공연하는 ‘렌트’를 13일 미리 봤다. 이 공연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팀이 펼쳤다.

배경은 크리스마스 무렵 뉴욕 빈민가의 아파트. 록뮤지션 로저와 영화감독 지망생 마크는 집세가 밀려 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아파트는 재개발로 헐릴 지경. 마크의 전 여자친구 모린의 항의 퍼포먼스 덕분에 아파트는 남고 로저와 클럽 댄서 미미는 동거를 시작한다.

로저는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미를 받아들일 수 없어 헤어진다. 이런 와중에 이들의 친구인 거리의 드러머 앤젤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으로 죽는다. 어느 날 실연의 아픔으로 노숙자 생활을 하던 미미가 발견되고, 로저는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서 착안한 줄거리지만 극중 현실은 한층 엄혹하다.

‘렌트’는 넘버 ‘오직 오늘뿐(no day but today)’에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복해 강조한다. 순간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아낌없이 사랑하라는 말이다. 2막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는 ‘사랑의 계절’에서도 그렇다. ‘52만5600분이라는 소중한 시간. 1년을 어떻게 재나요. 날짜, 계절, 매일 마신 커피, 만남과 이별의 시간으로? 그것은 사랑. 사랑으로 느껴 봐요.’

‘렌트’는 다양한 인종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해당 인종 배우를 캐스팅했다. 이번 브로드웨이 팀에는 일본 배우 유카 다카라(알렉시)도 들어 있다. 오리지널 캐스팅 배우인 애덤 파스칼과 앤서니 랩은 13년 경력답게 노련하다. 흑인 배우 하니파 우드, 그웬 스튜어트의 가창력에 일본 관객들은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모린의 퍼포먼스가 성공한 뒤 축하파티에서 부르는 넘버 ‘라 비 보엠(La Vie Boheme)’은 ‘렌트’의 정신을 담고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듯 양성연애, 이성연애, 삼각관계, 여장남자, 남장여자…. 각자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예술가들이 랩으로 외치는 장면도 감상 포인트다.

뮤지컬 ‘렌트’는 무대 세트 전환 없이 조명으로만 공간을 분리하며, 스토리 전개가 빠르다. 이야기 전개를 좀 더 상세하게 푼 영화 ‘렌트’를 먼저 보면 뮤지컬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9월 8∼20일(월요일 공연 없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홀. 10만∼20만 원. 1544-1681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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