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25시]15년전 수술 자리서 거즈조각이…

  • 입력 2009년 6월 22일 02시 56분


H 씨(28·경기 수원시 영통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집 근처 외과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고 퇴원했다. 그 후 가끔 배가 아팠고 고교 입학 후에는 배에 뭔가 잡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신경이 과민해졌나 보다”하고 그냥 넘기곤 했다.

25세 때는 배에 있는 이물질이 좀 더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원 시 소재 대학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H 씨의 배를 몇 번 눌러보고 “아무것도 없다”며 “배가 아픈 것은 신경성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해 겨울 H 씨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내과를 찾았다. 수액을 맞으며 감기 증상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수액을 맞는 동안 H 씨는 화장실에 못 가 방광이 가득 차고 배가 불룩했다. 그때 의사는 H 씨의 배 표면이 뭔가에 의해 볼록 튀어나와 있는 것을 봤다. H 씨의 배를 만져본 후 “배 속에 뭔가가 있다”며 당장 초음파검사를 할 것을 권했다. 검사 결과 종양인 듯했다.

의료사고 발생 10년내 손배 청구해야

H 씨는 다시 대학병원을 찾았다. 장 간막에 있는 ‘염증성 종양’이 있어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당일 종양 제거를 위해 배를 가른 의료진은 이물질의 정체를 알고 경악했다. 이물질은 종양이 아니라 거즈 조각이었다. 초등학교 때 H 씨에게 맹장 수술을 해 준 의사가 수술 시 사용했던 거즈를 남겨둔 채 봉합을 한 것이다.

H 씨는 기가 막히고 화가 나 소송을 걸고 싶었다. 너무 오래전 일인데 소송이 가능할까. H 씨가 배 속에 거즈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6세 때였다. 수술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열한 살에 받았다. 무려 15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한데 의료사고는 발생일로부터 10년 이내에 청구해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알게된 날’ 이후 3년이내도 소송 가능

그러나 H 씨는 단서 조항이 하나 더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의료 사고 발생일뿐 아니라 의료사고였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해도 배상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손해를 안 날’은 단순히 손해가 발생한 것을 안 것만이 아니라 그 손해가 의료과오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점도 함께 알았을 때를 말한다.

H 씨는 6개월 후 맹장수술을 했던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법원은 병원 측이 위자료 800만 원을 포함해 106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는 소멸시효를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이렇게 오래된 사건에서 승소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의료사고였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라고는 하지만 ‘안다’는 것은 환자 측의 주관적인 뇌 활동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날이 언제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이럴 때는 ‘모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의료진에게서 직접 ‘별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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