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균]대학 자율화 가로막는 ‘해결사 청와대’

  • 입력 2009년 4월 6일 02시 53분


청와대가 그렇게 ‘한가한’ 조직인 줄 미처 몰랐다. 지난주 청와대가 세종대 후임 총장 인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기사화한 직후,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내놓은 해명을 듣고서야 알게 됐다.

대통령교육비서관이 주명건 전 세종대 재단이사장을 만나 “후임 총장은 아주대 김영래 교수가 됐으면 좋겠다”며 ‘윗분의 뜻’을 전했다는 본보 보도가 나가자 청와대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종대는 그동안 학내 분규와 관련해 교육과학기술부는 물론 청와대로도 많은 민원이 들어온 대학이다. (그래서) 김정기 교육비서관이 세종대 전 이사장을 만나 그동안 제기된 민원 내용을 전했을 뿐 특정 인물을 총장으로 선임하라고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

만나기는 했지만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군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김영래 교수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심사 부위원장을 맡았다. 당시엔 중도 계열로 분류됐지만 사실은 ‘친이’였다는 게 ‘친박’ 쪽의 시각이다. 비례대표를 받기로 돼 있었는데 이달곤 의원(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밀렸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청와대가 그에게 총장 자리를 주려는 이유도 그때의 ‘미안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부름은 교육비서관이 했지만 그 뒤에는 청와대 내 친이 실세가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뭐라고 해도 보은(報恩)용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백 번 천 번 양보해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언제부터 청와대가 민원이 들어오면 직접 출동하는 해결사 조직이 됐단 말인가. 혹시 청와대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만약 청와대에 민원이 들어왔다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담당 부처에 연락한 뒤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비리가 있다면 교과부가 감사에 나서면 될 것이고, 분쟁이 있다면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논의를 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비서관이 직접 나서서, 그것도 전 재단이사장을 만나서 ‘민원 내용’을 전달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누가 봐도 청와대의 월권이자 압력 행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세종대, 경기대 등 대학총장 선출 과정에서 잇달아 청와대와 교과부의 개입 의혹이 나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주창한 대학 자율화를 청와대 스스로 부인하고 망치는 꼴이다. 심지어 국립대도 법인화를 통해 자율권을 보장하겠다고 한 정부가 사립대 총장 선임에 입김을 행사하려는 구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김희균 교육생활부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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