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행복과 꿈을 파는 총선 마케팅

  • 입력 2008년 3월 13일 03시 03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 때 부수적 선전거리에 불과했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감성 마케팅이 이제 기업문화의 주류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기업들의 제품광고도 상품홍보에 그치지 않고 따뜻하고 착한 이미지를 파느라 분주하다. 많은 기업인과 경영학 교수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한다는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옌센도 ‘드림 소사이어티’(서정환 번역)라는 책에서 미래 사회는 ‘머리 못지않게 가슴이 중요해지는 시대’라고 말한다.

소득이 높아지고 개인주의 사고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내면이 공허해지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낀다. 옌센은 미래의 시장을 ‘모험 이야기 시장’ ‘사랑과 소속감의 시장’ ‘돌봄의 시장’ ‘정체성 시장’ ‘마음의 평화 시장’ ‘신념의 시장’으로 나눴다. 이 중에서 ‘사랑과 소속감을 주는 산업’이 미래 산업으로 유망하다는 것이다.

정치도 상품으로 보는 것이 정치 마케팅이다. 지역구는 시장이고 유권자는 소비자이며 후보자는 팔려야 할 상품이다. 신인 후보자나 새 정책은 신제품이요, 득표 전략은 판매 전략이며 여론 조사가 시장조사다. 하버드 경영대 존 켈치 교수는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연재하고 있는 ‘마케팅 노하우’ 칼럼에서 ‘정부를 불신하고 정책에 무관심한 정치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감동을 주는 정치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재산 문제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부자장관들 입에서 얼마나 어렵게 재산을 모았는지,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성공 스토리’가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개그프로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해명으로 더 화제가 된 그들의 말에는 감동을 주는 ‘스토리(story)’가 없었다.

지난 정부가 보여준 ‘이념 과잉’은 복잡한 세상을 복잡하게 보지 않고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틀린 것은 내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우겼다. 이념이 다른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장관 검증 과정에서 다시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어들이 나와서 안타깝다.

감동정치라고 해서 과거 정부처럼 와이셔츠 차림으로 청와대 회의를 한다거나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말이 아니다. 현장주의와 노 홀리데이도 일시적 눈요깃거리이지 지속적 감동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감동에도 급(級)이 있다. 눈이 아니라 마음을 잡아야 한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스토리·콘텐츠)은 하나 없는 ‘속빈 정치’에 속아본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하는 국회의원 지망생들이 표를 얻으려면 유권자 감성을 사로잡을 일이다. 재래시장 상인들과 악수하며 눈 맞추고 길거리에서 로고송 틀어 대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미국 뉴올리언스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마이클 르뵈프가 ‘평생의 고객으로 만드는 방법’이란 책에서 한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옷을 팔려 하지 말고 매혹적인 외모에 대한 ‘기대’를 팔아주세요. 장난감을 팔려 하지 말고 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팔아주세요. 내게 물건을 팔려고 하지 마세요. 그 대신 꿈과 느낌과 자부심과 일상의 행복을 팔아주세요.’

지금, 유권자들은 ‘꿈을 주고 일상의 행복을 파는 국회의원’을 원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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