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낸 직원들이 운다…기업 80% 보상제 없어

  • 입력 2005년 4월 20일 03시 32분


코멘트
LG전자의 전직 연구원 7명이 발명 특허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회사 측을 상대로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가 된 특허는 DVD플레이어에 쓰이는 기본적인 기술로 LG전자가 각국의 전자업체로부터 특허 사용료(로열티)를 받는다.

소송을 제기한 강모 씨 등 전직 연구원들은 “회사가 연구개발에 대해 정당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대답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총 37억 원 규모의 이 소송은 세계적으로 로열티를 받는 특허를 놓고 벌어진 국내 첫 직무발명 관련 소송으로 재판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발명에서 소송까지=LG전자는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 100여 건의 DVD 관련 특허를 따냈다. 2003년 7월에는 이 가운데 6개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6가지 기술은 △무단복제 방지 △영상-음성 동기화 △노래방 △성인물 차단 △다중 오디오 전송 △빠르게 되감기 등으로 대부분의 DVD플레이어에 기본 기능으로 쓰인다.

전직 연구원들은 이 6가지 기술을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중앙지법 등에 직무발명 보상금 청구소송을 각각 제기했다.

DVD 규격은 세계적으로 통일돼 있어 DVD플레이어를 생산하는 기업은 관련 기술을 처음 개발한 기업에 로열티를 내야 한다.

소송을 제기한 김모 씨는 “해외 특허를 출원하면 당사자에게 격려금으로 10만 원을 줬는데 그게 전부였다”며 “다른 보상금에 대해선 회사가 차일피일 지급을 미뤘다”고 주장했다.

이들 연구원 7명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모두 LG전자를 떠났다.

▽논점은 뭔가=우선 LG전자가 받게 되는 로열티의 규모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인 김준효(金俊孝) 변호사는 “LG전자는 이 특허들을 통해 상호사용(크로스 라이선싱)에 따른 비용 절감을 포함해 2015년까지 약 3000억 원의 수익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DVD 기술은 5년 내에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예상 수익이 터무니없이 높게 계산됐다”고 맞서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연구원들이 모두 퇴직했다는 점도 문제가 될 전망.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퇴직자에게 주는 보상금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

소송에 대해 LG전자 측은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LG전자 특허팀의 한 임원은 “민감한 문제여서 로열티 수입에 대한 보상 규정이나 퇴직자 보상 건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공계를 살리려면=회사의 구성원이 업무 과정에서 얻게 된 발명을 ‘직무발명’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국내에서 출원된 13만9200건의 특허 가운데 직무발명은 11만6800여 건으로 전체 특허의 83.9%에 이른다.

회사는 발명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고 권리를 얻어야 한다는 게 특허법에 규정된 직무발명 제도의 핵심.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직무발명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특허청이 벌인 직무발명 보상제도 실태 조사 결과 80%가 넘는 기업이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일각에서는 과학기술 인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이공계 살리기’의 핵심이며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이 그 첫걸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윤배(金允培) 변리사는 “직무발명 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으면 개발자와 회사 사이에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라며 “개발자의 회사 이탈과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직무발명 제도를 정확히 규정해 놓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외국의 경우는

“기술자들이여, 일본을 떠나라.”

미국 샌타바버라대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51) 교수는 올해 초 도쿄(東京)고등법원이 제시한 화해안을 수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니치아화학에 근무할 때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나카무라 교수는 회사에 발명에 대한 권리를 넘겨주면서 약 6억 엔(약 57억 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는 1심 도쿄지방법원이 200억 엔(약 1900억 원)을 보상하라고 판결한 것에 비하면 훨씬 낮은 액수였다.

미국에서는 직무발명에 대해 계약을 중시한다. 좋은 기술자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자의 직무발명을 회사가 어떻게 보상할지에 대해 미리 상세한 계약을 해야 한다.

독일은 ‘종업원 발명에 관한 법률’로 해결했다. 기술자는 직무발명을 회사에 신고하고 회사는 이를 종업원으로부터 넘겨받을지 결정한다. 회사가 권리를 넘겨받으려면 상세하게 적힌 관련 법률에 따라 보상액을 지급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직무발명에 대한 인식이 차츰 변하고 있다.

1998년 삼성전자의 한 연구원이 자신이 개발한 휴대전화 문자입력방식 ‘천지인’을 회사가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냈던 소송은 연구원과 삼성전자의 ‘합의’로 마무리됐다. 최근 먹는 무좀약을 개발한 국내 D제약 사건에선 연구원이 1심과 2심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SK㈜는 지난해 직무발명 포상제를 처음 도입해 기술을 외부에 처분해 발생한 이익의 5%를 포상하기로 했다. 포스데이터도 특허수익의 30%를 해당 직원에게 보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