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화성연쇄사건 12년간 담당형사 남상국 경위

  • 입력 2003년 5월 12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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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원기자
전지원기자
최근 영화 ‘살인의 추억’이 인기를 모으면서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다시 주목받는 데 대해 경기 화성경찰서 수사 2계장 남상국(南相國·49·사진) 경위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1988년 화성경찰서 태안파출소장으로 부임해 이 살인사건과 관계를 맺은 뒤 1990년부터 이 경찰서 형사계장으로 10년간을 근무하면서 무려 12년 동안 이 사건을 수사해왔다.

그는 “영화는 원래 흥미 위주로 각색되는 것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다만 여러 사람이 연관된 무거운 사건이 경솔하게 다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86년 10월 경기 화성시 태안읍의 한 농수로에서 박모씨(25·여)가 양손이 묶인 채 목 졸려 숨진 시체로 발견된 후 5년 동안 10여명의 여성이 비슷한 수법으로 희생된 화성 연쇄살인사건. 연인원 180만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됐지만 결국 살인범을 검거하지 못했다.

남 경위는 “당시 각지에서 온 130여명의 형사들이 수사본부를 꾸려 밤을 새워 가며 사건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의욕이 앞서다보니 무리수가 따르기도 했다. 경찰의 강압수사로 여러 용의자들이 허위 자백했다가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영화 속 마지막 범인의 모델이 된 한 청년에 대해 남 경위는 “단순 성추행범이었다”며 “몇 대만 맞고도 자신이 범인이라고 말할 정도의 유약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8차례나 용의자를 검거하는 수사 과정에서는 용의자 800여명의 음모를 강제로 뽑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범인은 누굴까. 남 경위는 “범인이 백발 3가닥을 현장에 남겼고, 그가 여자 어린이를 안고 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 등으로 미뤄 노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1993년 경기 수원시의 한 빈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백발노인 김모씨(67)를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었다.

당시 기술로는 김 노인과 범인의 DNA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수사 방향이 ‘20대 중반의 방위병 출신’에 맞춰져 나이 많은 인물을 배제했던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17년 수사 인생의 3분의 2를 바친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그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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