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영예’ 국가적 경사에도 웃지 못하는 폴란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6일 07시 37분


코멘트
지난해 호명되지 못한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10일(현지시간)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7)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폴란드는 국가적 경사를 맞고도 한 마음으로 기뻐하지 못했다. 집권 여당인 ‘법과 정의당’(PiS)과 각을 세워온 토카르추크가 수상 당일 소감 발표에서도 13일 치러질 총선 투표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집권당 지지자들은 “그의 수상으로 폴란드가 분열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토카르추크의 바람과 달리 PiS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반(反) 난민 성향에 사법·언론 기관에 대한 통제 강화를 예고해온 PiS의 재집권에 대해 토카르추크는 “행복하지 않다”고 밝혔다. 15일 제77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간담회에서 “독일에서 장편 ‘야곱의 책들’의 낭독 투어를 하던 중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고, 때마침 열린 도서전에 참석하게 됐다”며 발언을 이어갔다.

“사회와 기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그들의 정책이 극장과 박물관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폴란드 작가들은 검열을 받지는 않지만 몇몇 주제에 대해 스스로 검열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앞으로 그런 분위기가 강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PiS에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동참했고 앞으로의 4년은 과거와 다를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그는 사회 참여가 활발한 폴란드 작가들 중에서도 목소리가 도드라지는 편이다. 환경, 여성 인권, 동물, 성소수자 등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 그의 장편 ‘야곱의 책들’은 거미줄처럼 복잡다단한 21세기 유럽의 현실 문제를 18세기로 옮겨 그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현실을 묘사하면 곧 정치적인 성격을 품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다. 우리가 먹고, 생활하고, 소통하는 모든 것에 정치적인 면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일상은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또 정치는 우리가 처지 또는 소속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 공동으로 호명된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트케(77)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한트케는 1998년 코소보 인종 학살의 주범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동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요 언론과 조이스 캐롤 오츠 등 세계적 작가들이 비난 행렬에 동참해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그는 “한트케와 비교해 좋은 작가(Good Girl)로 호평을 받는 것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호의적인 논평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보통 나는 (정치적 발언으로) 나쁜 역할을 주로 한다. 이 때문에 지금의 역할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토카르추크는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노벨 문학상까지 받으면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문학은 현실과 환상, 전통과 미래, 일상과 거대 담론을 넘나든다.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조합해 만든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의 문제를 꼬집는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독자의 마음에 의심을 품게 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다. 도발하고, 의구심을 일으키고, 불분명한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문학이 사람들을 성별, 인종, 국가를 초월해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연결한다고 믿는다.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연대하도록 만든다고 믿는다. 늘 현실을 고민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

프랑크푸르트=이설 기자 sno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