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중편소설 당선작]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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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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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1. 인터뷰

장맛비가 오는 저녁, 나는 학위 논문에 쓸 인터뷰를 수정하기 위해 국제난민기구의 한국 대표부를 향했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와 에어컨 냉기가 사라지자 안경 렌즈가 삽시간에 부옇게 변했다. 나는 손을 뒤로 뻗어 가방 안쪽을 뒤적거렸다. 안경집이 깊숙이 처박혔는지 손에 걸리지 않았고 등에는 금방 땀이 솟았다. 그때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했고 한 장소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바람이나 냄새를 동반하기도 했다. 아주 흐릿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나는 기억의 늪 위로 떠오르려는 것들의 실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실체를 마주하기 전에 알아차려지기 마련이고, 그게 두려움이나 공포라면 반응 속도는 훨씬 빠르니까.

난민기구를 찾은 건 학위 논문에 쓸 인터뷰를 최신 것으로 수정하라는 지도교수의 조언 때문이었다. 제네바 국제개발대학의 저명한 노학자인 내 지도교수는 내후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논문을 끌어오던 몇몇 학생들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것으로 그가 갖고 있던 부채감을 덜어내는 의식을 치렀다. 그는 내게 보낸 메일의 말미에 용기의 의미에 대해 썼다.

용기란 주어진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품고 가는 것이라네.

그 문장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나는 다시 인터뷰를 해볼 용기를 냈다. 5년 전 그리스에서 진행하던 사례 연구를 중도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계약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내게 이번 기회는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었다. 물론 내게는 난민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남아 있었다. 이 모든 이유들이 넝쿨처럼 단단하고 질퍽하게 뒤엉켜 나를 옭아맸다.

인터뷰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나는 무하마드의 비정상적인 관심에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운동화 끈을 묶으며 섬뜩하게 웃는 무하마드의 표정은 강렬한 데다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마지막까지 무하마드가 아술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도리어 무하마드의 사례가 내 논문을 돋보이게 해 줄 거라고 확신했다.

일주일 뒤, 나는 인터뷰이들과 다시 만났다. 아이들이 들려준 난민캠프는 전쟁터나 다름이 없었다. 일순간 일터와 학교가 폭파되고 집과 가족을 잃고 일상이 무너진 그들에게 삶은 이미 지옥이었다. 소요 사태와 총기 난사는 잠잠하다 싶으면 일어났고 늘 부족하던 구호품은 도난당하기 일쑤였으며 아이든 어른이든 여성은 늘 극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무하마드는 화재로 죽은 누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와 해변에 나갔다 돌아왔을 때 텐트는 화염에 휩싸인 채 타오르고 있었다고 했다. 누나와 남자는 텐트 안에 갇혀 죽은 채 발견되었다. 누나는 나체였고 남자는 하의를 탈의한 상태였다. 텐트에는 발화의 원인이 된 촛불만 덩그러니 바닥을 굴러다녔다. 남자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지만 무하마드는 그가 누군지 금방 알아보았다. 남자의 팔 한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가 ‘아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 레스보스

5년 전 겨울, 나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난민캠프에서 봉사단원으로 일했다. 내가 맡은 임무는 구호 물품을 정리하는 것이었지만 비상 상황으로 나 역시 구조 작업에 합류했다. 라일라와 아술은 그날 내가 구조선에서 처음 목격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난민 보트 위에 비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라일라는 아이들을 살리려다 죽어간 어머니의 손을 새벽 내내 붙들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연민과 애정의 마음으로 라일라에게 각별히 정성을 쏟았다. 라일라는 피난길에 안경을 잃어버려 생활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었고 그것을 눈여겨봐 온 나는 어느 저녁 산책길에 내 안경을 라일라에게 선물했다. 빛이 충만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라일라가 말했다. “어떤 책에서 봤는데요. 달의 빛은 태양에 반사되어 나온대요. 그래서 육안으로 태양의 빛은 볼 수 없어도 달의 빛은 볼 수 있대요.”

라일라가 나를 슬쩍 보더니 말을 이었다.

“언니에게는 따뜻한 빛이 흘러요.”

그때 저편에서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어둠 속 희미한 실루엣은 물류 팀 팀장과 선배 린이었다. 나는 라일라와 나를 향한 그들의 불편한 기운을 감지했다. 마침 캠프의 문제아 하싼이 일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와 팀장, 린은 그 길로 현장을 찾았다.

하싼의 패거리는 새로 온 난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싼은 결국 그리스 경찰에 호송됐다. 나는 경찰차에 억지로 호송되는 하싼을 바라봤다. 하싼이 입은 티셔츠 오른쪽 팔이 나풀거렸다. 내전 중에 거리에 떨어진 수류탄이 터져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하싼은 난민캠프에 들어와서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깨어난 하싼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고 했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싼의 가족들은 그때까지도 시리아에 남아 있었고 어린 여동생은 폭파된 집에서 잿더미로 변한 채 꺼내졌다고 했다.

나는 경찰차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얼마 안 가 그가 다시 난민캠프로 들어올 거라는 건 하싼도 우리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그리스 정부에 난민캠프는 골칫덩어리였다. 일이 터져도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 경찰은 캠프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 사이 난민캠프는 유서 깊은 고대 유적지 그리스의 한쪽 땅에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었다. 새로운 폭력이 탄생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갔다. 세상이 그곳에서 종말을 고했고 다시 해가 뜨면 종말 속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고개를 돌린 나는 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았다. 이 모든 상황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라일라의 뒷모습이 현장으로부터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팀장의 질책을 들으며 나는 린이 나를 모함한 거라고 확신했다. 팀장과 서먹하게 인사를 나눈 후 나는 린을 찾아가 항변했다. 린은 오히려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로 라일라와의 관계에서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는 그녀의 오해에 엉겁결에 큰 소리를 치고 창고를 나왔다. 정작 밖으로 나와 나는 한참 머뭇거렸다. 정황상 무슨 행동이라도 취하지 않을 수 없어진 나는 사무실에 가서 난민 입양 절차를 물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내가 깨달은 사실은 봉사단원들이 그동안 나를 사례 관찰이나 하러 온 뜨내기로 치부해 왔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며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왔다. 더는 레스보스에 남고 싶지 않았다.

3. 한국행

결국 나는 이주 후 퇴소 처리를 했다. 학교가 있는 제네바가 아니라 한국행을 택했다. 마지막까지 라일라가 마음에 걸려 한국에 가더라도 라일라를 돕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나 역시 월세 난민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그 사이 시리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 간 내전이 주변 국가와 국제 사회의 무력 전쟁으로 변질되었고 난민들은 매년 수천 명씩 불어났다. 내 앞에 산적한 일상의 문제들도 규칙적이고 끈질기게 나를 흔들어댔다. 그토록 절박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기억의 세계에서마저 익사당하는 현실, 나로서도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가끔 라일라가 생각날 때면 나는 라일라를 입양하겠다고 소리를 질러대던 나의 한때의 충동을 아프게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일라가 그 사실을 알기라도 했다면 나의 그 돌이킬 수 없는 치기와 감상이 라일라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캠프의 봉사단원들과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른가, 그들은 적어도 여전히 그곳에 있지 않은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답이 없는 시간 속에 파묻혀 나는 깊이 침잠했다. 아이들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도 끈덕지게 꼬리를 물었다. 그곳은 죽음이 무력한 곳, 죽음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타인의 죽음을 가벼이 여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곳이었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평범으로서의 악에 익숙해져 버리는 곳이었다. 나는 내가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피했다는 자책감으로부터 끝끝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연락이 닿은 린을 통해 라일라의 소식을 접했다. 린은 라일라가 하싼에게 성폭행을 당하다 자의일지 모를 화재로 텐트 안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고 전했다.

4. 내가 만든 사례

아술을 잘 이용하라는 지도교수의 조언에 따라 나는 힘들게 아술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아술의 인터뷰 내용은 다행히 논문의 얼개에 맞춘 방향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라일라에 대한 질문을 의식적으로 기피했다. 다섯 번째 인터뷰에서 아술은 하싼에 얽힌 자신과 라일라의 이야기를 꺼냈다. 막 캠프에 들어온 남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던, 왼팔 한가득 담요와 간식거리를 챙겨다 주던, 저녁마다 찾아와 자신을 보호해준 나쁜 새끼, 하싼에 대해.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집에 돌아온 나는 아술에 대한 나의 마음을 굳혔다. 나는 아술이 내 삶에 들어와 버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술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끌어안아 줄 사람은 이곳에서 내가 유일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아술이 한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려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아술은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인터뷰가 끝나고 아술의 숙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아술이 인터뷰 첫날 내게 보낸 일종의 신호였던 운동화를 발견했다. 캠프를 나오던 마지막 날 아침 내가 아술을 위해 따로 준비해 뒀던, 아술이 그토록 원했던 하얀 운동화였다. 아술은 내게 라일라의 유품인 안경을 건넸다. 안경이 라일라를 마지막까지 지킨 희망이었다고 말하며. 아술은 달빛이 태양의 빛에서 반사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내게 상기시켰다.

“모든 행성이 태양처럼 빛날 필요는 없어요. 태양은 달을 통해 달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수성이나 목성을 통해 그것들의 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하는 빛이 되기도 하죠. 사람은 모두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봐요. 상황은 시선에 따라 이렇게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이기도 해요. 힘든 상황이 주어지면 곧 죽을 것같이 힘들지만 그 상황을 견디게 하는 게 때로는 하나의 물건, 한 사람, 하나의 희망일 수 있어요.”

아술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천천히 낮게 읊조렸다.

“그 희망이 라일라에게는 안경이었어요. 당신에게는 논문이었겠지만…….”

5. 그래도 남는 것

일 년 후, 나는 학생 대표의 영광을 안으며 졸업장을 받았고 졸업식 후에는 유엔난민기구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할 기회를 얻으며 성공적으로 학위 후 과정에 진입했다. 그 후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한국개발학회 20주년 포럼의 발표자로 초청되었다. 이번 포럼 참석은 학계와 각국 정부에 내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였다.

포럼 전날 저녁에 나는 리허설 중인 회의장을 찾았다. 회의장을 둘러보다 우연히 다시 만난 난민기구의 직원에게서 아술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직원은 몇 달 전 아술이 난민캠프의 봉사단원 숙소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아술은 마지막까지 숙소를 지킨 봉사단원이었고 피격당한 그의 품에는 갓 태어난 예멘 출신의 남자아이가 아술의 손을 잡은 채 밭은 숨을 쉬고 있었다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발표 예행연습을 하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의식이 아뜩해지곤 했다.

다음 날, 포럼에서의 주제 발표는 순조롭게 끝났다. 폐회 후 만찬장에서 지도교수는 내게 중요한 인사들을 소개시켰다. 그들은 내 발표가 인상적이었다며 아술의 뒷이야기를 물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아술은 난민캠프의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고 내년 봄 다시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거짓말했다. 사람들은 내 사례가 시종일관 감동적이라며 흥분했다. 나는 만찬 내내 태연을 가장한 채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다. 현실에서 아술은 죽었지만 사례 안에서 그는 불멸의 지위를 얻었다고, 내가 만든 사례는 그렇게 굳혀져야 한다고 나는 내 자신에게 항변하고 읍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레스보스가, 라일라가, 아술이 점점 더 생생하게 되살아나 나는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술을 몇 잔이나 거푸 마셨지만 허물어진 마음의 중심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뛰듯이 호텔 밖으로 달려 나가 먹은 것을 모조리 게워 냈다. 그러곤 주저앉아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았다. 멀리 호텔 경사면 사이에 둥근 달이 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술은 그날 밤 달을 보며 희망에 대해 말했다. 그가 말하던 희망이 지금 나에게는 참담한 절망의 사례가 되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내가 만든 사례 안에서, 이제는 아술이 아닌, 나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사례가 되어 있었다. 벽을 손으로 짚었지만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주저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호텔 경사면 사이에 떠 있던 달이 사라졌다. 태양의 빛에서 반사되어 나온다는 빛마저 스러진 시간, 누군가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 당선소감 - 최유안 씨

글과 세상에 조용히 스며들어 가겠습니다


최유안 씨
최유안 씨
세 살 때 오른쪽 발목이 자전거 바퀴에 말려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으면 평생 발을 쓰지 못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그 순간이 제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쓰는 삶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후 언제 어디서든 어느 형태로든 소설을 쓰고 또 썼습니다. 그동안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소설을 짓는 동안 소설이 저를 짓는다는 사실, 글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글을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

부족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정과 애정으로 채워나가겠습니다. 아버지, 엄마, 동생들, 투병 중인 고모, 친척들, 친구들 사랑합니다.

장정희 선생님, 고등학교 문예부를 기억하는 건 꿈을 잃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어요. 소행성B612 문우님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고맙습니다. 박상우 선생님, 소설을 쓰는 기술보다 인간과 인생을 중시하시던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우연히 발목의 상처가 없어진 걸 발견했습니다. 새살이 돋아 상처를 이겨내도록 몰랐다니 놀라웠습니다. 글 쓰며 살겠다 다짐한 순간의 기억이 무뎌지고 쓰는 순간이 오롯해질 때까지 조용히 글과 세상에 스며들어 가겠습니다. 고통과 근심이 따르겠지만 배우는 과정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쓰겠습니다. 인간과 인생을 탐구하며, 늘 질문하며 작가로 행복한 삶을 살겠습니다.

△1984년 광주 출생 △전남대 독어독문학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

● 심사평

찬찬한 화법으로 곡진한 문제제기 훌륭

구효서 씨(왼쪽)와 은희경 씨.
구효서 씨(왼쪽)와 은희경 씨.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7편이었다. 4편은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였고 3편이 ‘밑도 끝도 있는 이야기’였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라는 표현이 소설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기존의 서사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소설답지 않다는 평을 받을 수 없다. 소설을 포함해 예술은 생물처럼 변하는 개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질서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질서 자체에 혐의를 두기 때문이다. 질서 사회에서는 질서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예술의 세계에서는 억압일 수 있다. 그래서 질서의 세 축인 시간, 공간, 인간을 왜곡하고 이탈한다. 이는 얼핏 혼돈처럼 보이지만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질서를 지킨 작품과 거부한 작품별로 그것을 이루어 낸 솜씨에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연자 씨’는 세계와 현상을 독특한 감성으로 바라보는데, 그 시선이 낱낱하고 집요해서 읽는 내내 무서울 정도였다. 다 읽고 났을 때 그려지는 인상이 문장의 섬세함과 날카로움에 버금간다면 분명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실러캔스 또는 속도에 관한 농담’에서는 통 큰 패기가 느껴졌다. 3억5000만 년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아무리 먼 장소와 관계의 거리까지도 한 번에 건너뛰려는 시도가 그것이었다. 성공적인 사태와 문장으로 조직되었더라면 정말 통쾌한 소설이 될 뻔했다.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는 잘 읽히고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거니챌 수 있을 만큼 짜임새가 눈에 익었다. 찬찬한 화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와 양심 선언하듯 난민의 현실과 그 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 난민의 사례를 연구하는 학자의 소회를 밝힌다. 세계인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할 문제를 곡진한 방식을 빌려 제기하는 소설이, 오랜만인 듯 반가웠던 것은 물론 작가의 훌륭한 이야기 솜씨 덕분이었다.

구효서·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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